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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아버지 필리포스가 그리스를 통합하며 준비한 페르시아 원정을, 즉위한 알렉산드로스가 그대로 밀어붙였다. 명분은 페르시아 전쟁의 복수였다.
결과11년 만에 그리스에서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스무 살에 즉위해 11년 만에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관찰과 분류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고, 그의 체계는 2천 년 동안 서양 학문의 표준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까지 왔다 물러간 뒤의 혼란을 타고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조언자 카우틸리야가 통치와 첩보에 관한 책을 남겼다.
사람은 본디 착하다 — 그러니 임금은 힘이 아니라 어짊으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을 버린 임금은 갈아치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전쟁 · BC 334 · 마케도니아·그리스 연합군 vs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아버지 필리포스가 그리스를 통합하며 준비한 페르시아 원정을, 즉위한 알렉산드로스가 그대로 밀어붙였다. 명분은 페르시아 전쟁의 복수였다. 11년 만에 그리스에서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4세기 중반 그리스는 지쳐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를 갉아먹었고,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돈에 휘둘렸다. 북쪽 변방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인에게 반쯤 야만으로 취급받던 곳이었다.
필리포스 2세가 이 나라를 바꿨다. 6미터 창 사리사를 든 밀집방진과 기병을 함께 쓰는 전술을 만들고,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꺾었다. 그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다 기원전 336년 암살됐다.
페르시아는 200년 된 제국이었다. 이집트에서 인더스까지 다스렸고 왕의 길이라는 도로망과 사트라프 총독제를 갖췄다. 다만 그리스 원정 실패 뒤로 반란이 잦았고 이집트가 이탈했다 돌아온 참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스무 살에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계획을 그대로 이었다. 명분은 150년 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대한 복수였다. 실제 이유는 마케도니아의 빚과, 자기 자리를 굳혀야 할 필요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웠고 일리아스를 베고 잤다고 한다. 자신을 아킬레우스에 견줬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334년 3만 5천으로 건너갔다. 그라니코스, 기원전 333년 이소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 다리우스 3세를 이겼다. 가우가멜라에서는 병력이 몇 배로 열세였는데, 적진의 틈을 만들어 스스로 그 틈으로 돌진하는 방식으로 이겼다.
이집트에서는 해방자로 환영받고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인더스까지 갔다. 기원전 326년 히다스페스에서 코끼리 부대를 꺾었지만, 8년을 행군한 병사들이 더 가기를 거부했다. 돌아오는 길에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서른둘에 죽었다.
【그래서】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어 제국은 부하들이 나눠 가졌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셀레우코스,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다.
【남은 것】
그가 남긴 것은 제국이 아니라 섞임이다. 그리스어가 지중해와 서아시아의 공용어가 됐고, 그 덕에 300년 뒤 신약성서가 그리스어로 쓰여 빠르게 퍼졌다. 그리스 조각과 인도 불교가 만나 간다라 미술이 나왔다. 부처의 얼굴에 그리스풍 옷 주름이 잡히는 것이 그 흔적이고, 그 양식이 중국을 거쳐 한국의 불상까지 이어진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최대의 학문 도시가 됐다. 도서관과 무세이온에서 에우클레이데스가 기하학을,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둘레를 계산했다.
평가는 갈린다. 문명을 섞은 사람인가, 도시를 태우고 수십만을 죽인 정복자인가. 페르시아 쪽 기억에서 그는 지금도 파괴자다.
지도에서 보기: BC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디아도코이 전쟁 필리포스 2세의 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