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스 2세의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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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필리포스 2세의 정복BC 359 – BC 338
마케도니아 vs 그리스 도시국가

변방 취급받던 마케도니아가 금광 수입으로 상비군을 길렀다. 긴 창 사리사와 망치-모루 전술이 무기였다.

올린토스 BC 348카이로네이아 BC 338

결과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테베 연합을 꺾고 그리스를 통합했다. 열여덟 살 알렉산드로스가 이 전투에서 좌익을 맡았다.

21년 · 그리스 통합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플라톤사상BC 380 · 이데아를 말한 사람
BC 428 – BC 348

스승의 죽음을 보고 민주정에 회의를 품었다. 아카데미아를 세워 900년간 이어지는 학교를 만들었다.

  • 「국가」 — 철인이 다스려야 한다
  • 동굴의 비유 —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자
  • 아카데미아 설립 — 서양 최초의 대학
아리스토텔레스사상BC 335 · 논리학에서 생물학까지 학문의 틀을 세운 철학자
BC 384 – BC 322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관찰과 분류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고, 그의 체계는 2천 년 동안 서양 학문의 표준이었다.

  • 리케이온 설립, 소요학파
  • 「형이상학」「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
  • 삼단논법 — 형식논리학의 출발
알렉산드로스장군BC 334 · 마케도니아 왕
BC 356 – BC 323

스무 살에 즉위해 11년 만에 인더스까지 닿았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32세에 죽는다.

  •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 격파
  •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건설
  • 그리스 문화를 인더스까지 퍼뜨림

그 무렵의 사건

BC 390
켈트족의 확산
갈리아의 켈트 전사 브렌누스가 로마를 약탈했다. 「패자에게 화 있으라」— 알프스 북쪽 유럽은 켈트의 땅이었다.
할슈타트와 라텐 문화로 알려진 켈트족은 BC 5세기부터 갈리아·브리타니아·이베리아·아나톨리아까지 퍼졌다. BC 390년 알리아에서 로마군을 깨고 도시를 점령해 금을 받고 물러났다. 저울에 칼을 던지며 한 말이 전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과 로마화로 대륙의 켈트 언어는 사라졌고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에만 남았다. 드루이드와 할로윈의 뿌리가 이들이다.
BC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가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렸다.
제자 플라톤이 이 재판을 기록하며 서양 철학이 문서로 남기 시작했다.
BC 312
아피아 가도
길이 제국을 만든다.
로마 최초의 포장 간선도로. 자갈과 돌을 여러 층으로 깔아 비가 와도 군단이 하루 30km를 갔다. 이후 8만 km의 도로망이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다.
BC 30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BC 300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금속이 함께 건너갔다.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필리포스 2세의 정복

전쟁 · BC 359 · 아들보다 먼저 판을 짠 사람

변방 취급받던 마케도니아가 금광 수입으로 상비군을 길렀다. 긴 창 사리사와 망치-모루 전술이 무기였다. 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테베 연합을 꺾고 그리스를 통합했다. 열여덟 살 알렉산드로스가 이 전투에서 좌익을 맡았다.

【그때 그 자리】 BC 4세기 중엽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북쪽의 변방이었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을 반쯤 야만인으로 여겼다. 왕이 있고, 부족이 갈려 있고, 이웃에게 늘 시달렸다.

필리포스는 젊을 때 테베에 인질로 있었다. 거기서 에파메이논다스의 군대를 보았다.

【왜 그렇게 됐나】 돌아와 왕이 된 뒤 군대를 새로 만들었다.

사리사를 도입했다. 길이 5~6m의 창이다. 그리스 중장보병의 창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앞쪽 다섯 줄의 창끝이 동시에 적을 향한다. 정면으로는 뚫을 수 없다.

대신 무거워 두 손으로 잡아야 하므로 방패가 작아졌다. 옆과 뒤가 약하다.

그래서 기병을 함께 썼다. 「헤타이로이(왕의 동무들)」라는 중기병이다.

방진이 적을 붙들어 두고, 기병이 옆이나 틈으로 파고들어 결판을 낸다. 「망치와 모루」다.

직업군으로 만들었다. 농사철에 흩어지지 않고 1년 내내 훈련했다.

그리고 공성 기술자를 고용했다. 그때까지 그리스 군대는 성을 함락하지 못해 굶겨야 했다.

【어떻게 흘렀나】 판가이온 금광을 차지했다. 해마다 1,000탈란톤이 나왔다.

그 돈으로 용병을 사고 상대의 정치인을 매수했다.

「금을 실은 나귀가 지나갈 수 있다면 함락하지 못할 성은 없다」는 말이 그의 것으로 전한다.

혼인도 무기였다. 일곱 번 혼인했는데 거의 다 동맹을 위한 것이었다.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가 「필리피카」라는 연설로 경고했다. 지금도 「필리픽(격렬한 탄핵 연설)」이라는 말이 여기서 왔다.

듣지 않았다. 아테네는 늦게 움직였다.

BC 338년 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테베 연합군을 깼다. 열여덟 살 알렉산드로스가 기병을 이끌고 테베의 신성부대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코린토스 동맹을 만들었다. 스파르타만 빠지고 그리스 전체가 들어왔다.

형식은 동맹이고 실제는 지배였다. 그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결의했다.

선발대를 이미 소아시아로 보낸 상태였다.

BC 336년 딸의 결혼식에서 경호원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됐다. 배후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있다.

【남은 것】 알렉산드로스가 물려받은 것은 나라만이 아니다.

훈련된 직업군, 검증된 전술, 금광, 그리고 이미 결의된 원정 계획이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아버지가 만든 도구로 한 것」이라는 평가가 오래 있었다.

1977년 베르기나에서 훼손되지 않은 왕릉이 발굴됐다. 필리포스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 유골의 눈 부위에 상처가 있었다. 기록대로 한쪽 눈을 화살에 잃은 흔적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알렉산드로스 동방원정 코린토스 전쟁 디아도코이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