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빈 체제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3건

머스킷 전쟁1807 – 1837
마오리 부족 연합들 간의 전쟁

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응아푸히족의 원정 1818무기 균형의 확산 1830년대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30년 · 마오리 사회 전역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편
영국-미얀마 전쟁1824 – 1885
영국 동인도회사 vs 콘바웅 왕조

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제1차 전쟁·양곤 점령 1824–1826제2차 전쟁·하부 미얀마 병합 1852제3차 전쟁·만달레이 함락 1885티보 왕 인도 유배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3차례 · 왕조 멸망
아편전쟁1839 – 1842
영국 vs 청

영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를 아편이 메우고 있었다. 청이 아편을 몰수·폐기하자 영국이 자유무역과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함대를 보냈다.

광저우 1841저우산 1841난징 조약 1842

결과청이 영국에 패해 홍콩을 내주었다.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3년 · 홍콩 할양과 5개 항 개항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4명

배비지과학1837 · 수학자·발명가
1791 – 1871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 차분기관 설계
  • 해석기관 구상 1837
  •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협업
에이다 러브레이스과학1843 · 최초의 프로그램을 쓴 사람
1815 – 1852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 해석기관 주석 집필 1843
  • 최초의 알고리즘 기록
  • 프로그래밍 언어 Ada의 이름
과학1843 · 물리학자
1818 – 1889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의 실험적 증명
  • 열의 일당량 측정
  • 에너지 단위 줄의 유래
패러데이과학1831 · 제본소 견습공 출신 실험가
1791 – 1867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 전자기유도 발견 1831
  • 발전기 원리의 토대
  • 왕립학회 크리스마스 강연 창시
젬멜바이스과학1847 · 산부인과 의사
1818 – 1865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 손 소독으로 산욕열 사망률을 낮춤
  • 당대엔 배척당함
  • 사후에 세균설로 입증됨
켈빈과학1848 · 물리학자
1824 – 1907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 절대온도 눈금 제안
  • 대서양 해저케이블 사업 참여
  • 열역학 이론 정립
라이엘과학1830 · 지질학자
1797 – 1875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 지질학 원리 저술 1830
  • 동일과정설 확립
  • 다윈에게 큰 영향을 줌
과학1827 · 물리학자
1789 – 1854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 옴의 법칙 발표 1827
  • 당대엔 무시당함
  • 전자공학의 기초 법칙
나이팅게일사회1855 · 크림 전쟁의 「램프를 든 여인」,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1820 – 1910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 크림 전쟁 야전병원 간호(1854–1856)
  •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설립(1860)
  • 「장미 도표」— 통계 시각화의 선구
리빙스턴탐험1855 · 아프리카 내륙을 걸어서 횡단한 선교사 탐험가
1813 – 1873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 아프리카 대륙 횡단(1853–1856), 빅토리아 폭포
  • 잠베지 원정, 노예무역 고발
  • 스탠리와 조우(1871), 잠비아에서 사망
무함마드 알리정치1820 · 근대 이집트를 연 사람
1769 – 1849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 맘루크 학살로 권력 장악
  • 면화 재배와 공장
  • 프랑스에 유학생 파견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과학1858 · 박물학자
1823 – 1913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 자연선택 이론 독자 도달 1858
  • 다윈과 공동 발표
  • 생물지리학의 기초를 놓음
시몬 볼리바르장군1819 · 여섯 나라를 떼어 낸 사람
1783 – 1830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 보야카 1819
  • 그란콜롬비아의 결성과 해체
  • 혁명에 헌신한 자는 바다를 간 것이나 같다
다윈과학1859 · 비글호의 박물학자
1809 – 1882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 비글호 항해 1831–1836
  •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
  • 종의 기원 출판 1859
최제우사상1860 · 동학을 연 사람
1824 – 1864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 1860년 동학 창시
  •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
  • 1864년 혹세무민으로 처형
샤카 줄루장군1818 · 줄루를 제국으로 만든 사람
1787 무렵 – 1828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 이클와 — 짧은 찌르는 창
  • 소뿔 진형
  • 이복동생들에게 살해
베니토 후아레스정치1860 · 멕시코의 원주민 대통령
1806 – 1872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 레포르마 개혁
  • 막시밀리안 황제 축출
  • 이웃의 존중이 곧 평화다
주세페 가리발디장군1860 · 천 명의 의용군으로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얻어 사르데냐 왕에게 바쳤다
1807 – 1882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 천인원정대(1860)로 시칠리아·나폴리 점령
  • 점령지를 사르데냐 왕에게 헌납
  •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에도 참여한 국제적 혁명가
김정호과학1861 ·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
1804 무렵 – 1866 무렵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 대동여지도 — 22첩 목판본
  • 10리마다 눈금을 넣어 거리를 재게 함
  • 전국을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창작으로 본다
주제 지 산마르틴장군1817 · 안데스를 넘긴 장군
1778 – 1850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 안데스 도하 — 5,000명이 4,000m를 넘었다
  • 과야킬 회담 뒤 은퇴
링컨정치1863 · 미국 16대 대통령
1809 – 1865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 남북전쟁을 지휘
  • 노예해방 선언 1863
  • 게티즈버그 연설
웰링턴장군1815 ·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철의 공작」
1769 – 1852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 반도전쟁 — 살라망카·비토리아 승리
  • 워털루 전투 승리(1815)
  • 영국 총리(1828–1830), 가톨릭 해방법
메테르니히정치1815 · 빈 체제를 설계한 반동의 재상
1773 – 1859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 빈 회의 주도(1814–1815)
  • 카를스바트 결의 — 언론·대학 통제
  • 1848년 혁명으로 실각·망명
맥스웰과학1865 · 전기·자기·빛을 하나로 묶다
1831 – 1879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통합하고 빛이 전자기파임을 계산으로 보였다.

  • 맥스웰 방정식 1865
  • 빛=전자기파 규명
  •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단서

그 무렵의 사건

1838
트레일 오브 티어스
1838년 체로키족 등 미국 남동부 원주민 약 6만 명이 강제로 서쪽 인디언 준주로 이주당했다. 수천 명이 도중에 죽었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에 따라 연방 정부가 강행했다 — 대법원이 체로키족의 손을 들어줬는데도 잭슨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다. 체로키족만 4천 명 가까이 숨졌다고 추산된다.
1840
와이탕이 조약
영어본과 마오리어본의 뜻이 다르다.
마오리 부족장들과 영국이 맺은 조약이다. 영어본은 주권을 넘긴다고 썼고 마오리어본은 통치를 맡긴다고 썼다. 그 차이가 전쟁과 땅 몰수로 이어졌고, 지금도 이 조약을 근거로 배상 심판이 열린다.
1845
아일랜드 대기근
1845년부터 5년 가까이 감자 마름병이 반복되며, 감자에 크게 의존하던 아일랜드에서 약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넘게 나라를 떠났다.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정부의 미흡하고 늦은 구호 대응은 이후 두고두고 비판받았으며, 곡물 등 다른 식량이 아일랜드 밖으로 계속 수출된 사실은 특히 큰 분노를 샀다. 대기근을 피해 떠난 이민자들은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 훗날 아일랜드계 미국인 공동체의 뿌리가 됐고, 이 시기의 기억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1845
통가 왕국의 통일
1845년, 조지 투포우 1세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통가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했다. 통가는 태평양 섬나라 중 유일하게 외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나라로 남았다.
그는 서양의 헌법 제도를 일찌감치 받아들여 1875년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오히려 서구 열강에게 통가가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있는 나라'로 인식되게 하는 효과를 냈다. 19세기 말 영국과 보호조약을 맺어 외교권 일부를 내주긴 했지만 내정과 왕실은 그대로 유지했고, 1970년에는 이 보호관계마저 완전히 청산하고 온전한 독립국이 됐다.
1846
마취의 발명
보스턴에서 에테르 마취로 공개 수술이 성공했다. 수술이 비명 없는 것이 됐다.
10월 16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치과의사 모턴이 환자에게 에테르를 들이마시게 했고 외과의 워런이 목의 종양을 잘랐다. 환자는 깨어나 「아무 느낌 없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수술은 속도가 전부였고 환자는 붙잡힌 채 비명을 질렀다. 이듬해 클로로포름이 나왔고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에 썼다. 리스터의 소독법(1867)과 합쳐져 근대 외과가 태어났다.
1831
그란콜롬비아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 10년 만에 갈라졌다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남미 북부를 하나의 국가로 묶어 세운 그란콜롬비아는 지역 간 이해관계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볼리바르가 병으로 물러난 직후인 1830~1831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차례로 이탈하며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 세 나라로 갈라졌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아편전쟁

전쟁 · 1839 · 영국 vs 청

영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를 아편이 메우고 있었다. 청이 아편을 몰수·폐기하자 영국이 자유무역과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함대를 보냈다. 청이 영국에 패해 홍콩을 내주었다.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자리】

18세기 내내 무역 적자를 본 쪽은 영국이었다. 영국인이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중국 차를 대량으로 사들였는데, 청은 영국에서 살 것이 없었다. 건륭제가 1793년 매카트니 사절에게 우리는 없는 것이 없으니 너희 물건이 필요 없다고 답한 것이 그 상황이다.

게다가 청은 광저우 한 항구에서 공행이라는 지정 상인을 통해서만 외국과 거래하게 했다. 은이 계속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왜 그렇게 됐나】

영국 동인도회사가 찾아낸 답이 인도산 아편이었다.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 중국에 팔고, 그 은으로 차를 샀다. 삼각무역이다.

효과는 컸다. 1830년대에 아편 중독자가 수백만으로 늘었고, 은이 거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은값이 오르자 은으로 세금을 내야 하는 농민의 부담이 실질적으로 두 배가 됐다. 청 조정에는 아편을 합법화해 세금을 걷자는 안과 뿌리 뽑자는 안이 맞섰다.

【어떻게 흘렀나】

1839년 도광제가 임칙서를 광저우로 보냈다. 임칙서는 영국 상인의 아편 2만 상자, 1,400톤을 몰수해 석회를 섞어 바다에 버렸다.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도 썼다. 당신 나라에서는 금지한 물건을 왜 우리에게 파느냐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파병안을 271대 262로 통과시켰다. 아홉 표 차이였다. 반대편에서 글래드스턴은 이보다 부정한 전쟁을 알지 못한다고 연설했다.

1840년 함대가 왔다. 청군은 수십만이었지만 화승총과 목선이었고, 영국은 증기선 네메시스호와 후장식 대포를 가져왔다. 바람과 상관없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 앞에서 방어선이 소용없었다.

【그래서】

1842년 난징 조약이 맺어졌다. 홍콩 할양, 다섯 항구 개항, 배상금 2,100만 달러, 관세 자주권 상실, 영사재판권 인정. 아편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었다.

이후 미국과 프랑스가 같은 조건을 요구했고, 1856년 2차 아편전쟁으로 베이징이 함락되고 원명원이 불탔다.

【남은 것】

중국은 이 시기를 백년국치라 부른다. 1842년부터 1949년까지다. 홍콩은 1997년에 돌아갔다.

동아시아 전체가 이 소식을 읽었다. 일본은 청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방향을 틀었고, 조선은 반대로 문을 더 닫았다. 같은 사건을 보고 정반대로 움직인 결과가 이후 백 년을 갈랐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시크 전쟁 멕시코-미국 전쟁 태평천국의 난 크림 전쟁 영국-미얀마 전쟁 그리스 독립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