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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왜란지트 싱 사후 시크 제국의 궁정 혼란 속에 칼사 군대가 수틀레지강을 건너 영국령으로 들어갔다.
결과두 차례 전쟁 끝에 펀자브가 병합됐다. 시크 병사들은 이후 영국군의 핵심이 됐고,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갔다.
왜미국이 텍사스를 합병하자 국경 분쟁이 불거졌다. '명백한 운명' 이념 아래 미국이 서쪽으로 팽창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결과미군이 멕시코시티까지 진격해 점령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 가까이(현재의 캘리포니아·텍사스·애리조나·뉴멕시코 등)를 미국에 넘겼다.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통합하고 빛이 전자기파임을 계산으로 보였다.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경복궁을 다시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8년간 완두콩을 교배해 유전의 규칙을 찾아냈다. 죽고 나서야 유전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총살 직전 사면돼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인간의 밑바닥과 신의 문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20세기 철학과 심리학을 예고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읽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절반의 세계를 움직였다.
폭발 사고로 동생을 잃고도 안전한 폭약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부고를 읽고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15세에 즉위해 막부를 끝내고 에도를 도쿄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딴 45년 동안 일본은 봉건 국가에서 열강이 됐다.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배열해 주기율표를 만들고, 빈자리에 미발견 원소를 예측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농민의 옷을 입고 죽었다. 그의 비폭력 사상이 간디를 거쳐 세계로 퍼졌다.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전쟁 · 1846 · 멕시코가 국토의 절반을 잃은 전쟁
미국이 텍사스를 합병하자 국경 분쟁이 불거졌다. '명백한 운명' 이념 아래 미국이 서쪽으로 팽창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미군이 멕시코시티까지 진격해 점령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 가까이(현재의 캘리포니아·텍사스·애리조나·뉴멕시코 등)를 미국에 넘겼다.
그때 그 자리: 1846년, 미국이 1845년 합병한 텍사스의 국경을 두고 멕시코와 충돌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미군은 남쪽으로 진격해 1847년 멕시코시티까지 점령했다.
왜 그렇게 됐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미국이 대륙 전체로 팽창할 신의 뜻을 받았다는 이념이 당시 널리 퍼져 있었다. 텍사스 병합에 이어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까지 손에 넣으려는 의도가 개전의 배경으로 꼽힌다.
어떻게 흘렀나: 미군은 병력과 화력에서 앞섰고, 부에나비스타 전투와 멕시코시티 함락을 거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멕시코는 현재의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와 유타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대부분과 텍사스와 콜로라도와 와이오밍 일부, 국토의 절반에 가까운 땅을 미국에 넘겼다.
남은 것: 이 전쟁은 미국 내에서도 노예제 확장을 둘러싼 논쟁을 격화시켜 남북전쟁의 먼 배경이 됐다.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북부 영토 상실로 기억되며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시크 전쟁 태평천국의 난 아편전쟁 크림 전쟁 세포이 항쟁 이탈리아 통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