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통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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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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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고대의 끝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수의 통일 전쟁581 – 589
수 vs 진(陳)

북주를 물려받은 양견이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을 노렸다. 장강을 건널 대형 전함을 몇 년에 걸쳐 지었다.

건강 함락 589

결과위진남북조 369년의 분열이 끝났다. 통일 뒤 대운하로 남북을 물길로 이었고, 그 부역이 30년 뒤 수를 무너뜨린다.

8년 · 369년 분열의 종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쇼토쿠 태자정치604 · 일본의 틀을 세운 사람
574 – 622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 헌법 17조 — 화합을 첫 조항에
  • 관위 12계 — 혈통 아닌 능력
  • 호류지 — 세계 최고의 목조 건물

그 무렵의 사건

600
티와나쿠와 와리
해발 3,800미터의 도시.
티티카카 호숫가에 돌을 정밀하게 깎아 맞춘 도시가 섰다. 높은 땅에서 얼지 않게 짓는 두둑 밭을 썼다. 북쪽의 와리와 함께 안데스를 나눠 가졌고, 두 세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뒤에 잉카가 자란다.
600
소그드 상인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출신 상인들이 수백 년간 실크로드 무역을 사실상 장악했다.
사마르칸트·부하라를 근거지로 한 소그드 상인들은 중국·페르시아·비잔티움을 잇는 대상 무역로에서 언어(소그드어)까지 국제 통용어로 쓰일 만큼 영향력이 컸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과 안사의 난 이후 실크로드 교역 구조가 바뀌며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554
관산성 전투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데 분노한 백제 성왕이 신라를 공격했다가, 관산성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
성왕은 신라와 동맹해 한강 유역을 고구려로부터 되찾았으나, 곧이어 신라 진흥왕이 동맹을 깨고 그 땅을 독차지해버렸다. 격분한 성왕은 신라를 정벌하려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이 패배로 백제는 오랫동안 국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백제와 신라의 오랜 동맹(나제동맹) 관계도 완전히 끝났다.
553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
신라 진흥왕은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으며, 화랑도를 정비하고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이뤄 신라 전성기를 열었다.
진흥왕은 처음엔 백제와 손잡고 고구려로부터 한강 상류를 되찾았으나, 553년 돌연 동맹을 깨고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까지 빼앗아 한강 유역 전체를 손에 넣었다. 이 지역은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서해 뱃길을 확보해준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는 또 청소년 수련 단체였던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해 유능한 인재와 장군들을 길러냈고, 대가야를 정복하는 등 사방으로 영토를 넓혀 자신이 넓힌 국경 곳곳에 순수비(비석)를 세웠다.
610
이슬람의 시작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가 하나의 정치·종교권으로 묶인다.
612
살수대첩
수나라의 100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을지문덕은 살수(청천강)에서 이들을 크게 격파했다.
수 양제는 무리하게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했다. 을지문덕은 정면 승부 대신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적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로 수나라 별동대를 평양 근처까지 깊숙이 유인한 뒤 철수시켰고, 지친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건너는 순간을 노려 크게 무찔렀다. 30만이 넘던 별동대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이 참패는 수나라가 국력을 소진해 멸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수의 통일 전쟁

전쟁 · 581 · 370년 만의 통일과 37년짜리 왕조

북주를 물려받은 양견이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을 노렸다. 장강을 건널 대형 전함을 몇 년에 걸쳐 지었다. 위진남북조 369년의 분열이 끝났다. 통일 뒤 대운하로 남북을 물길로 이었고, 그 부역이 30년 뒤 수를 무너뜨린다.

【그때 그 자리】 589년이다. 후한이 무너진 220년 이후 370년 가까이 중국이 갈려 있었다.

삼국, 서진의 짧은 통일, 오호십육국, 남북조로 이어졌다.

북쪽은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들이, 남쪽은 한족 왕조들이 이어졌다.

북주의 외척 양견이 581년 왕위를 넘겨받아 수를 세웠다.

【왜 그렇게 됐나】 북쪽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북위 이래 균전제가 있었다. 나라가 땅을 나눠 주고 세금과 부역을 걷는 방식이다.

부병제가 있었다. 농민이 평소 농사짓다 번갈아 군역을 지는 제도로, 상비군을 유지하는 비용이 적었다.

그리고 북쪽의 지배층이 한족과 선비족이 섞인 집단이었다. 유목의 군사력과 한족의 행정이 합쳐져 있었다.

남쪽 진(陳)은 반대였다. 귀족들이 실권을 쥐고 사치했으며, 마지막 황제 진숙보는 시를 짓고 연회를 열었다.

【어떻게 흘렀나】 준비에 8년이 걸렸다.

먼저 북쪽의 돌궐을 이간해 동서로 갈랐다. 뒤를 안전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남쪽을 지치게 했다. 추수철마다 군대를 움직이는 시늉을 해서 진이 농사를 못 짓게 했다. 몇 년 되풀이하자 진이 대비를 게을리하게 됐다.

국경에 창고를 짓고 곡식을 쌓았다. 일부러 불이 나게 두어 진이 방심하게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588년 겨울 51만 8천 명을 여덟 갈래로 나눠 장강을 건넜다.

진의 방어선이 길어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몰랐다.

589년 정월 건강이 함락됐다. 진숙보는 우물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다.

【그래서】 통일 뒤에 한 일이 크다.

과거제를 시작했다.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방식이다. 문벌 귀족의 세습을 깨는 장치였고, 그 뒤 1,300년을 간다.

3성 6부제를 정비했다. 당이 그대로 이어받고, 그것이 신라와 일본으로 간다.

대운하를 팠다. 남쪽의 곡식을 북쪽으로 나르는 길이다. 이것이 그 뒤 중국을 하나로 묶는 동맥이 된다.

【남은 것】 그런데 37년 만에 망했다.

2대 양제가 무리했다. 대운하 공사에 100만 명이 넘게 동원됐고, 낙양을 새로 지었으며, 고구려를 세 번 쳤다.

612년 1차 고구려 원정에 113만이 동원됐다. 살수에서 대패했다.

농민 반란이 터졌고 618년 양제가 부하에게 살해됐다.

「진이 만리장성을 쌓고 망했고 수가 운하를 파고 망했다」는 말이 있다.

다만 남긴 것을 당이 그대로 썼다. 과거제와 운하와 관제가 그것이다.

수는 짧았고, 수가 만든 틀은 길었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