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왜참회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자 세 사람이 왕위를 주장했다.
결과해럴드가 북쪽에서 노르웨이군을 꺾고 400km를 남하해 헤이스팅스에서 졌다. 잉글랜드의 지배층·언어·법이 통째로 바뀌었고, 영어에 프랑스어 어휘가 쏟아져 들어왔다.
노르망디 공의 사생아로 태어나 잉글랜드 왕이 됐다. 헤이스팅스 한 번의 전투가 잉글랜드의 지배층과 언어를 통째로 갈았다.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신법을 비판하다 여러 번 유배됐다. 시·산문·글씨·그림에 모두 능했고, 황주 유배 시절의 「적벽부」가 대표작이다.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066 · 영어가 바뀐 해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자 세 사람이 왕위를 주장했다. 해럴드가 북쪽에서 노르웨이군을 꺾고 400km를 남하해 헤이스팅스에서 졌다. 잉글랜드의 지배층·언어·법이 통째로 바뀌었고, 영어에 프랑스어 어휘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그 자리】 1066년 1월 잉글랜드 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었다.
왕위 주장자가 셋이었다.
해럴드 고드윈슨 — 잉글랜드 최고 실력자로, 임종 자리에서 왕위를 약속받았다며 즉위했다.
노르망디 공 윌리엄 — 에드워드가 자기에게 약속했고, 해럴드가 노르망디에 왔을 때 성유물 앞에서 지지를 맹세했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 왕 하랄 하르드라다 — 옛 협정을 근거로 들었다.
【왜 그렇게 됐나】 9월에 하랄이 먼저 왔다.
해럴드가 북쪽으로 달려가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그를 죽였다. 바이킹 시대의 끝으로 꼽히는 전투다.
그 사흘 뒤 윌리엄이 남쪽 해안에 상륙했다.
해럴드가 다시 남쪽으로 400km를 행군했다.
【어떻게 흘렀나】 10월 14일 헤이스팅스다.
잉글랜드군은 언덕 위에 방패벽을 세웠다. 도끼를 든 보병이다.
노르만은 기병과 궁수를 함께 썼다.
하루 종일 방패벽이 버텼다. 그러다 노르만 일부가 물러나자 잉글랜드 병사들이 쫓아 내려왔다.
대열이 무너졌다. 그것이 계획된 후퇴였는지 실제 패주였는지는 논쟁이 있다.
해럴드가 죽었다. 눈에 화살을 맞았다고 전하는데,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그 장면이 뒤에 수선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윌리엄이 성탄절에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했다.
북부가 저항하자 1069~70년에 「북부 초토화」를 했다. 마을과 곡식과 가축을 없앴다. 수만 명이 굶어 죽었다.
1086년 「둠즈데이 북」을 만들었다. 잉글랜드의 모든 장원과 가축과 사람을 조사해 적은 장부다.
당시 기록이 이렇게 적었다.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중세 유럽에서 유례가 없는 행정 조사다.
20년 만에 잉글랜드 귀족이 거의 전부 교체됐다. 대영주 가운데 잉글랜드계는 손에 꼽았다.
【남은 것】 말이 바뀌었다.
300년 동안 궁정과 법정에서 프랑스어를 썼다. 영어는 농민의 말이 됐다.
그래서 영어에 짝이 생겼다. 기르는 짐승은 영어(cow, pig, sheep)이고 식탁에 오른 고기는 프랑스어(beef, pork, mutton)다.
키우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달랐던 것이다.
영어 어휘의 상당수가 이때 들어왔다. 법·정부·예술·요리에 관한 말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에 영지를 갖게 됐다. 그 얽힘이 300년 뒤 백년전쟁으로 간다.
1066년은 영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