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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왕위 계승 분쟁에 에드워드 1세가 중재자로 개입했다가 그대로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결과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된 뒤 로버트 브루스가 배넉번에서 대승했다. 아브로스 선언은 「우리는 영광이나 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적었다.
왜몽골 침입을 막고도 나눠 줄 땅이 없어 고케닌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결과토벌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꾸면서 막부가 무너졌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고, 곧 남북조 60년의 분열이 이어진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331 · 천황이 막부를 무너뜨리고 3년 만에 쫓겨나다
몽골 침입을 막고도 나눠 줄 땅이 없어 고케닌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토벌하러 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편을 바꾸면서 막부가 무너졌다. 호조 일족 800여 명이 집단 자결했고, 곧 남북조 60년의 분열이 이어진다.
【그때 그 자리】 14세기 초 가마쿠라 막부다. 창업자 미나모토 가문은 3대에 끊겼고, 호조씨가 집권(싯켄)으로 실권을 쥐고 있었다.
두 차례 몽골 침입을 막아 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됐다.
방어 전쟁이라 빼앗은 땅이 없었다. 목숨 걸고 싸운 무사들에게 줄 상이 없었다.
무사들의 살림이 어려워졌다. 분할 상속으로 토지가 잘게 쪼개진 것도 겹쳤다.
【왜 그렇게 됐나】 고다이고 천황이 그 틈을 보았다.
천황가는 그때 두 계통으로 갈려 번갈아 즉위하고 있었다. 막부가 그 순서를 정했다.
고다이고는 그 방식 자체를 거부했다. 천황이 실제로 다스리던 옛 체제로 돌아가려 했다.
두 번 실패했다. 1324년과 1331년에 계획이 새어 나갔다.
1331년 교토를 빠져나와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겐코의 난이다.
잡혀서 오키섬으로 유배됐다.
【어떻게 흘렀나】 그런데 지방에서 저항이 이어졌다.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가와치의 지하야성에서 버텼다. 작은 성인데 막부 대군을 몇 달 묶어 두었다.
통나무와 돌을 굴리고, 밤에 짚 인형을 세워 화살을 낭비하게 하고, 물길을 끊었다.
그 사이 고다이고가 오키를 탈출했다.
막부가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진압군으로 보냈다. 그가 도중에 배신해 교토의 막부 기관을 쳤다.
동시에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를 공격했다. 1333년 가마쿠라가 함락되고 호조 일족이 자결했다.
150년 만에 막부가 무너졌다.
【그래서】 고다이고가 친정을 시작했다. 「겐무의 신정」이다.
3년도 못 갔다.
논공행상이 공정하지 않았다. 싸운 무사보다 조정 귀족을 우대했다.
토지 소유를 전부 천황의 재가로 다시 정하겠다고 해서 혼란이 왔다.
무사들이 등을 돌렸다. 「이럴 거면 막부가 나았다」는 말이 돌았다.
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반기를 들었다.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미나토가와에서 맞섰다.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나갔다가 자결했다.
【남은 것】 고다이고가 요시노로 달아나 자기가 정통이라 주장했다. 다카우지는 교토에 다른 천황을 세웠다.
천황이 둘인 상태가 57년 갔다. 남북조 시대다.
다카우지가 무로마치 막부를 열었다.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뒤에 충신의 표본이 됐다. 특히 메이지 이후 그렇다 — 천황에게 목숨을 바친 인물로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 도쿄 황거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무사에게 줄 땅이 없어 무너진 정권을, 무사에게 땅을 주지 않아 다시 잃었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백년전쟁 홍건적의 난과 명의 건국 스코틀랜드 독립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