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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해당 없음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을 말하다
칼링가 정복에서 10만이 죽는 것을 보고 무력을 버렸다. 이후 불교를 후원하고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반성을 새겼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예와 학문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의 제자 한비와 이사가 법가로 갔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인물 · BC 270 · 코페르니쿠스보다 1800년 앞선 태양중심설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을 말하다
【그때 그 자리】
대부분의 그리스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돼 있다고 여겼다.
【왜 그렇게 됐나】
사모스 출신 천문학자로, 달이 반달로 보일 때 태양·지구·달이 이루는 각도를 재서 태양과 달까지의 상대적 거리를 계산하려 했다.
【어떻게 흘렀나】
정밀한 도구가 없어 오차가 컸던 이 계산 과정에서,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챘다. 작은 것이 큰 것 주위를 도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보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설을 처음 제안했다.
【그래서】
원저작은 남아 있지 않고 아르키메데스가 다른 책에서 그의 주장을 언급한 것으로만 전해진다. 별의 위치가 안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관측이 지동설과 안 맞는다고 여겨져 당대에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남은 것】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태양중심설을 발표하며 고대 그리스에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 아리스타르코스는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라는 수식어와 함께 뒤늦게 재조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