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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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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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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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아리스타르코스과학BC 270 · 천문학자
BC 310 무렵 – BC 230 무렵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을 말하다

  •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는 것을 계산
  • 최초의 태양중심설 제안
  • 당대엔 받아들여지지 못함
아소카정치BC 260 · 이기고 나서 후회한 왕
BC 304 – BC 232

칼링가 정복에서 10만이 죽는 것을 보고 무력을 버렸다. 이후 불교를 후원하고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반성을 새겼다.

  • 칼링가 전쟁 후 무력 포기 선언
  • 암벽 칙령 — 왕이 자기 잘못을 새긴 드문 기록
  • 불교를 스리랑카·중앙아시아로 전파
순자사상BC 250 · 성악설과 예치를 말한 유가의 현실주의자
BC 310 무렵 – BC 235 무렵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예와 학문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의 제자 한비와 이사가 법가로 갔다.

  • 성악설 — 맹자의 성선설 반박
  • 예(禮)와 교육에 의한 교화
  • 「천론」 — 하늘은 인간사에 무관심

그 무렵의 사건

BC 30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BC 300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금속이 함께 건너갔다.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BC 312
아피아 가도
길이 제국을 만든다.
로마 최초의 포장 간선도로. 자갈과 돌을 여러 층으로 깔아 비가 와도 군단이 하루 30km를 갔다. 이후 8만 km의 도로망이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다.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아리스타르코스

인물 · BC 270 · 코페르니쿠스보다 1800년 앞선 태양중심설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을 말하다

【그때 그 자리】

대부분의 그리스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돼 있다고 여겼다.

【왜 그렇게 됐나】

사모스 출신 천문학자로, 달이 반달로 보일 때 태양·지구·달이 이루는 각도를 재서 태양과 달까지의 상대적 거리를 계산하려 했다.

【어떻게 흘렀나】

정밀한 도구가 없어 오차가 컸던 이 계산 과정에서,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챘다. 작은 것이 큰 것 주위를 도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보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설을 처음 제안했다.

【그래서】

원저작은 남아 있지 않고 아르키메데스가 다른 책에서 그의 주장을 언급한 것으로만 전해진다. 별의 위치가 안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관측이 지동설과 안 맞는다고 여겨져 당대에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남은 것】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태양중심설을 발표하며 고대 그리스에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 아리스타르코스는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라는 수식어와 함께 뒤늦게 재조명됐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아소카 순자 유클리드 에라토스테네스 장자 한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