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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산업화한 열강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나눠 가졌다. 동맹 체제가 굳어지며 국지 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구조가 만들어졌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왜여러 개의 소국과 외세(오스트리아) 지배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반도를 사르데냐 왕국 중심으로 통일하려는 리소르지멘토(부흥)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결과카보우르 총리의 외교와 가리발디의 의용군(천인원정대)이 시칠리아·나폴리를 점령하며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됐고, 1870년 로마 병합으로 통일이 완성됐다.
왜우루과이 내정에 파라과이가 개입하면서 세 이웃 나라와 동시에 맞서게 됐다.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전쟁으로 꼽힌다.
결과인구·자원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파라과이가 끝까지 항전하며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성인 남성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했다는 추산도 있다.
왜러시아는 남하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칸국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중앙아시아 패권 경쟁)의 한 축이기도 했다.
결과코칸드 칸국은 완전히 병합됐고, 부하라와 히바는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명목상 자치를 유지했다.
왜천주교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가 처형되고,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에서 불탔다. 두 나라가 보복과 통상 요구를 겸해 함대를 보냈다.
결과프랑스와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했다. 조선은 막아냈지만 개항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왜에스파냐 왕위에 프로이센 왕족을 앉히려는 시도로 긴장이 높아졌고, 비스마르크가 전보 문안을 손질해 양국 여론을 자극했다.
결과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꺾고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원소를 원자량 순으로 배열해 주기율표를 만들고, 빈자리에 미발견 원소를 예측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농민의 옷을 입고 죽었다. 그의 비폭력 사상이 간디를 거쳐 세계로 퍼졌다.
15세에 즉위해 막부를 끝내고 에도를 도쿄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딴 45년 동안 일본은 봉건 국가에서 열강이 됐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읽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절반의 세계를 움직였다.
폭발 사고로 동생을 잃고도 안전한 폭약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부고를 읽고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경복궁을 다시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8년간 완두콩을 교배해 유전의 규칙을 찾아냈다. 죽고 나서야 유전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라코타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규합해 미군에 맞섰다. 1876년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기병대를 전멸시켰으나, 결국 1890년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다.
총살 직전 사면돼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인간의 밑바닥과 신의 문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20세기 철학과 심리학을 예고했다.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통합하고 빛이 전자기파임을 계산으로 보였다.
18세에 즉위해 산업혁명과 제국 팽창의 시대를 살았다. 인도 여제가 됐고 유럽 왕실의 할머니가 됐다.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1,093건의 특허.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발명을 산업으로 만들었고, 뉴욕에 세계 최초의 발전소를 세워 밤을 밝혔다.
압전 효과를 발견하다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찾다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기독교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고 위버멘시와 영원회귀를 말했다. 44세에 광기에 빠졌고 그의 책은 20세기 사상을 뒤흔들었다.
위에서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일본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끝났고 10년 뒤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초로 광견병 백신을 사람에게 썼다.
조슈의 하급 무사에서 4번 총리가 됐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기초했고, 을사늑약을 강요한 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에디슨의 직류에 맞서 교류 모터와 송전을 만들어 오늘의 전력망을 결정했다. 무선 전력의 꿈을 좇다 가난하게 죽었다.
노예제를 없애고 관료제와 학교와 철도를 들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땅 일부를 내주며 균형을 잡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드비어스로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고 케이프 식민지 총리가 됐으며 자기 이름을 딴 로디지아를 만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별도 병합하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고부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다 맞아 죽었다.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 불렸다. 우금치에서 기관총 앞에 무너졌다.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친러 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조선 침탈에 방해가 된다고 본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그를 시해했다(을미사변).
이탈리아의 침공을 아드와에서 격퇴했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이긴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 자주독립과 근대 개혁을 이끄는 여론을 일으켰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했다.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 퇴위당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인물 · 1871 · 프로이센 재상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이후 20년간 유럽의 균형을 관리했다.
【그때 그 자리】
19세기 중반 독일은 나라가 아니라 지역 이름이었다. 39개 영방이 느슨한 연방을 이루고 있었다. 남쪽에는 오스트리아, 북쪽에는 프로이센이 있어 누가 독일을 이끌 것인가를 두고 다퉜다.
1848년 혁명 때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려 통일 헌법을 만들고 프로이센 왕에게 황제 자리를 제안했다. 왕은 거절했다. 시궁창에서 주운 왕관이라 불렀다. 아래에서 만든 통일이 실패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1862년 빌헬름 1세가 군비 확장을 두고 의회와 부딪쳐 퇴위를 고민할 때,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재상이 됐다.
그는 의회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현재의 큰 문제는 연설과 다수결이 아니라 철과 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산 승인을 얻지 못한 채 세금을 걷고 군을 키웠다.
【어떻게 흘렀나】
그는 세 차례 전쟁을 설계했다.
1864년 오스트리아와 손잡고 덴마크와 싸워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얻었다. 그리고 그 땅의 관리 문제를 일부러 분쟁거리로 남겼다.
1866년 그 분쟁을 구실로 오스트리아와 싸웠다. 7주 만에 이겼다. 여기서 그의 판단이 드러난다. 승리 후 오스트리아를 관대하게 처리했다. 영토도 배상금도 거의 요구하지 않았다. 뒷날 적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뒤에 동맹이 된다.
1870년 프랑스와 싸웠다. 에스파냐 왕위 계승 문제로 프랑스 대사가 빌헬름 1세와 나눈 대화 전보를, 비스마르크가 문장을 잘라 프랑스가 모욕당한 것처럼 보이게 고쳐 공표했다. 엠스 전보 사건이다. 프랑스가 격분해 먼저 선전포고했다. 방어 전쟁이라는 명분이 프로이센에 넘어갔고, 남부 독일 영방들이 함께 참전했다.
1871년 1월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이 선포됐다. 프랑스의 상징적인 장소를 고른 것이다.
【그래서】
통일 뒤 그는 방향을 바꿨다. 더 이상 팽창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겠다며,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동맹망을 짰다. 오스트리아·러시아와 삼제동맹, 이탈리아를 넣은 삼국동맹, 러시아와의 재보장조약이 그것이다. 복잡했지만 20년간 유럽에 큰 전쟁이 없었다.
안에서는 사회주의자를 탄압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을 만들었다.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산재보험, 1889년 연금이다. 노동자를 국가 편으로 끌어오려는 계산이었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제도적 출발점이 이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로 자주 언급된다.
1890년 젊은 빌헬름 2세와 부딪쳐 물러났다. 새 황제는 러시아와의 재보장조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프랑스와 손잡았고, 비스마르크가 막으려던 양면 전쟁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남은 것】
통일 독일이 유럽의 판을 바꿨다. 급성장한 이 나라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이후 유럽 외교의 핵심 문제가 됐고,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1914년으로 갔다.
목표를 정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의 대명사로 인용된다. 동시에 이길 수 있을 때 멈춘 사람으로도 인용된다. 그가 물러난 뒤 독일이 멈추지 못한 것이 이후를 갈랐다는 평가가 있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멘델레예프 톨스토이 메이지 천황 카를 마르크스 노벨 흥선대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