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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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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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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백제·고구려 멸망660 – 668
신라·당 연합 vs 백제·고구려

신라가 백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당과 손잡았다. 당은 고구려를 뒤에서 치려는 목적이 있었다.

황산벌 660사비성 660평양성 668

결과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먼저, 8년 뒤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8년 · 두 왕조가 연달아 무너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9명

김유신장군660 · 신라 장군
595 – 673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군을 이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 황산벌에서 계백을 꺾음
  • 백제·고구려 정벌을 이끔
  • 나당전쟁에 대비한 군제 정비
계백장군660 · 백제의 마지막 장수
? – 660

황산벌에서 5천으로 신라 5만을 맞았다. 네 번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다. 떠나기 전 자기 가족을 죽였다고 전한다.

  • 황산벌 전투
  • 네 차례 격퇴 뒤 전사
  • 백제 멸망과 함께 죽었다
김춘추정치654 · 신라 29대 무열왕
603 – 661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 648년 나당 동맹을 맺음
  • 진골 출신 첫 왕
  • 660년 백제 멸망을 봄
원효사상668 · 신라의 승려
617 – 686

당으로 가던 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돌아섰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이후 시장과 마을을 돌며 글 모르는 사람에게 불교를 전했다.

  • 대승기신론소 — 중국에서도 읽혔다
  • 화쟁 — 갈라진 학설을 아우름
  • 파계하고 설총을 낳았다
현장사상645 ·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서유기」의 삼장법사
602 – 664

국법을 어기고 서역으로 나가 17년 만에 경전 657부를 싣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기는 인도 역사의 1급 사료다.

  • 인도 나란다에서 유학(631–643)
  • 「대당서역기」 저술
  • 「반야심경」「유식」 경론 번역
문무왕정치676 · 신라 30대 왕
626 – 681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어긴 당을 다시 몰아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묻혔다.

  • 668년 고구려 멸망
  • 675년 매소성·676년 기벌포에서 당을 격퇴
  • 대왕암 — 바다에 묻힌 왕
의상사상676 · 신라 화엄종을 연 승려
625 – 702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 사상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에 화엄종을 열었다.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세우며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 당 유학 후 화엄종 개창
  • 부석사 등 화엄십찰 건립
  • 「화엄일승법계도」 저술
후세인 이븐 알리사상680 · 카르발라에서 순교해 시아파의 정신적 중심이 된 인물
626 – 680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4대 칼리파 알리의 아들. 우마이야 칼리파 야지드 1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다 카르발라에서 소수의 지지자와 함께 전멸했다.

  • 카르발라 전투에서 순교(680)
  • 시아파에게 가장 중요한 추모일(아슈라)의 기원
  • 불의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됨
우마르정치640 · 이슬람 제국의 틀을 만든 2대 칼리파
584 무렵 – 644, 재위 634 – 644

10년 만에 시리아·이집트·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정복지의 세금·군대·달력 제도를 세워 아랍 부족 연합을 제국으로 바꿨다.

  • 야르무크·카디시야 승리로 비잔티움·사산 격파
  • 예루살렘 무혈 입성(637)
  • 히지라력 제정, 디완(급여 대장) 설치

그 무렵의 사건

661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
661년, 무아위야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세습 칼리파국을 열었다. 이슬람 최초의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고 왕조 체제로 바뀌었다.
4대 칼리파 알리가 암살된 뒤,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를 합의로 뽑던 관행이 세습으로 바뀐 이 전환은 훗날 순니-시아 분열의 먼 배경이 됐다.
671
스리위자야
말라카 해협을 쥔 바다의 나라.
수마트라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을 600년간 쥐었다. 당의 승려 의정이 이곳에 머물며 산스크리트를 배웠다. 성을 남기지 않아 오래 잊혔다가 20세기에 비문으로 확인됐다.
676
신라의 삼국통일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682
신문왕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직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학을 세워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이자 유력 진골 귀족이던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에 연루된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귀족에게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해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냈다. 지방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해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기반도 마련했다.
628
영이 숫자가 되다
빈자리가 아니라 계산할 수 있는 수가 됐다.
브라마굽타가 영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뤘다. 음수도 함께 정리했다 — 빚을 재산에서 빼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가 됐다.
622
헤지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가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됐다.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된 순간.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김유신

인물 · 660 · 신라 장군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군을 이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그때 그 자리】

김유신은 신라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신라의 원래 지배층이 아니었다. 그의 증조부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다. 532년 나라를 들어 신라에 항복한 집안이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였다. 진골 아래 6두품부터는 아무리 공을 세워도 오를 수 있는 자리에 천장이 있었다. 가야계는 진골 대우를 받았지만 원래 왕경 귀족들 사이에서는 밖에서 온 집안이었다.

7세기 초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몰렸다. 백제 의자왕이 40여 성을 빼앗았고 642년 대야성이 무너졌다.

【왜 그렇게 됐나】

이 상황이 김유신에게는 기회였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출신보다 능력이 먼저 필요해진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움직였다.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와 혼인시켰다. 삼국유사에는 언니 보희가 꿈을 판 이야기와, 김유신이 혼인 전에 임신한 동생을 불태우려는 시늉을 해 선덕여왕 앞에서 김춘추가 나서게 만든 일화가 전한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가야계 무장 집안과 왕족이 결합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647년 상대등 비담이 여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별이 떨어져 군심이 흔들리자 김유신은 연에 불을 매달아 띄워 별이 다시 올라갔다고 했다. 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실권을 잡았다.

【어떻게 흘렀나】

654년 김춘추가 무열왕이 됐다. 진골이 왕이 된 첫 예다.

660년 김유신이 5만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계백의 5천과 맞섰다. 네 번을 졌다. 화랑 관창을 보내 죽게 하고 그 시신을 보여 군사들의 분노를 끌어올린 뒤에야 넘었다. 미담으로 전해지지만, 어린 소년을 두 번 사지로 보낸 결정이었다.

668년 고구려 원정에는 나이 때문에 직접 나가지 못하고 후방을 맡았다. 이후 당과의 전쟁에서도 전략을 세웠다. 673년 일흔아홉에 죽었다.

【그래서】

흥덕왕 때 흥무대왕으로 추존됐다. 신하로서 왕의 칭호를 받은 유일한 예다.

【남은 것】

평가는 갈린다. 삼국사기는 그를 최고의 인물로 그린다. 김부식 자신이 신라 왕족의 후손이라는 점을 감안해 읽어야 한다. 반대로 조선 후기부터는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겨레를 쳤다는 비판이 있었다.

다만 7세기의 사람에게 겨레라는 감각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반론도 있다. 당시 삼국은 서로를 남으로 여기는 별개의 나라였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밖에서 온 집안 출신이 신라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골품제라는 닫힌 제도 안에서도 전쟁이라는 비상 상태가 예외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예외가 끝나자 신라는 다시 닫혔다. 200년 뒤 최치원이 6두품의 벽에 부딪혀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같은 제도의 다른 얼굴이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계백 김춘추 원효 현장 문무왕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