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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힉소스를 몰아낸 이집트가 국경을 시리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완충지대를 만들어 두 번 다시 침입당하지 않겠다는 발상이었다.
결과투트모세 3세가 17차례 원정해 이집트 최대 판도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두 나라가 공주를 주고받는 동맹으로 돌아섰다.
조카의 섭정으로 시작해 스스로 파라오가 됐다. 초상에 왕의 수염을 달게 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왕권의 표식이었다.
계모 하트셉수트의 그늘에서 20년을 기다렸다가 즉위했다. 17차례 원정으로 이집트 최대 판도를 만들었다.
해당 없음
인물 · BC 1470 · 왕이 된 여성
조카의 섭정으로 시작해 스스로 파라오가 됐다. 초상에 왕의 수염을 달게 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왕권의 표식이었다.
【그때 그 자리】 BC 15세기 이집트 신왕국. 남편이자 이복오빠인 투트모세 2세가 죽고 어린 조카 투트모세 3세가 왕이 되자 섭정을 맡았다.
7년쯤 뒤 스스로 파라오를 칭했다.
【왜 그렇게 됐나】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남성의 자리였다. 그는 그것을 정면으로 부수지 않고 형식을 빌렸다.
조각상에 남성 파라오의 복장을 하고 가짜 수염을 달았다. 아버지 아문 신이 자기를 낳았다는 신화를 벽에 새겨 정통성을 만들었다.
【어떻게 흘렀나】 22년을 다스렸다. 전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무역을 열었다. 푼트(지금의 소말리아나 에리트레아 부근)로 배 다섯 척을 보내 몰약나무·상아·흑단·향료를 들여왔다. 그 원정 장면이 데이르 엘 바하리 장제전 벽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 푼트의 집과 사람과 물고기까지 그렸다.
그 장제전 자체가 걸작이다. 절벽 아래 세 층으로 된 열주 신전인데, 3,500년 전 건물치고 현대 건축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죽은 뒤 20여 년이 지나 그의 이름과 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투트모세 3세 또는 그 아들의 지시로 본다.
여성이 왕이 된 선례를 지우려 했다는 해석과, 왕위 계승을 정리하려는 정치적 조치였다는 해석이 갈린다. 개인적 원한이라기에는 20년이 너무 늦다.
【남은 것】 2007년 이빨 하나를 단서로 미라의 신원이 확인됐다. 비만이었고 당뇨와 골암을 앓았으며 쉰 살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3천 년 역사에서 여성 파라오는 손에 꼽는다. 그중 가장 오래 다스렸고 가장 크게 지웠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투트모세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