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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왜결혼으로 합쳐진 두 왕국이 마지막 이슬람 영토를 노렸다. 새 화포가 산성을 하나씩 열었다.
결과781년의 레콘키스타가 끝났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출항했고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 스페인의 세계 제국과 종교적 획일화가 동시에 시작됐다.
왜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찾다 아메리카에 닿았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해 두 왕국을 합쳤고, 그라나다를 정복한 그해 콜럼버스에게 배 세 척을 내주었다.
장군으로 손니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다. 메카 순례 뒤 팀북투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키웠다.
노트 속에 미래를 그린 사람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료 무역의 길이 바뀌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주인이 됐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신 앞의 평등과 카스트 부정을 설파하며 시크교를 열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홉 명의 구루를 거쳐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로 집대성됐다.
14세에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샤가 됐다. 12이맘 시아파를 강제해 수니파 이웃들과 갈라선 페르시아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왔다.
조각가를 자처했으나 교황의 명으로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고, 여든 넘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 피렌체 외교관이 실직 후 쓴 얇은 책이 근대 정치학의 출발이 됐다.
교회의 부패를 풍자하고 그리스어 신약을 펴냈다. 루터에게 길을 열었지만 분열은 거부했다.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492 · 끝까지 인도라 믿은 사람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찾다 아메리카에 닿았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그때 그 자리】 1453년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동방 무역로가 비싸졌다. 향신료를 구할 다른 길이 필요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길을 뚫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왜 그렇게 됐나】 그의 계산이 틀렸다. 지구 둘레를 실제보다 25%쯤 작게 잡았고 아시아가 동쪽으로 훨씬 뻗어 있다고 믿었다.
포르투갈 왕실이 거절한 것은 지구가 둥근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 학자들은 이미 둘레를 알고 있었다. 그의 숫자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스파냐가 1492년에야 받아들였다. 그해 그라나다를 되찾아 레콩키스타가 끝났고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흘렀나】 8월 3일 배 세 척과 90명으로 떠나 10월 12일 바하마의 한 섬에 닿았다.
그곳을 인도의 언저리라 믿었다. 원주민을 인디오라 부른 것이 그래서다. 네 차례 항해하는 동안 끝까지 그렇게 믿었다.
쿠바를 중국의 일부로, 히스파니올라를 일본으로 여겼다.
【그래서】 히스파니올라에 정착지를 세우고 금을 요구했다. 할당량을 못 채운 원주민의 손을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1500년 통치가 가혹하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여 본국으로 송환됐다. 복권됐으나 총독 자리는 잃었다.
1506년 바야돌리드에서 죽었다. 자기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모르는 채였다.
【남은 것】 그 대륙에 이름을 준 것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다. 그가 「이곳은 아시아가 아니라 새 대륙」이라고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1492년 이후 1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8~9할 줄었다. 대부분 천연두와 홍역 때문이다.
미국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로 바꾸는 주가 늘고 있다. 무엇을 기념하는가를 다시 묻는 중이다.
지도에서 보기: 1492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이사벨 1세 아스키아 무함마드 다빈치 바스쿠 다가마 구루 나낙 이스마일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