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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소수점 일곱 자리의 원주율
열다섯에 작은 부족의 왕이 되어 갈리아를 통합했다. 다른 게르만 왕들이 아리우스파를 택할 때 홀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스물셋에 쓴 책에서 지구가 자전한다고 했다. 원주율을 3.1416으로 계산했고, 일식과 월식이 그림자 때문임을 밝혔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인질로 자라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 이탈리아를 33년 다스리며 로마 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480 · 천 년을 앞선 원주율 계산
소수점 일곱 자리의 원주율
【그때 그 자리】
원주율을 정확히 구하는 것은 동서양 수학자들의 오랜 과제였다. 당시 중국에서 쓰이던 값은 소수점 몇 자리에서 그쳤다.
【왜 그렇게 됐나】
남북조 시대 남조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천문학자로, 천문·역법·기계 제작에 두루 능했다.
【어떻게 흘렀나】
원에 내접·외접하는 다각형의 변의 수를 늘려가며 원주율을 좁혀 나가는 계산을 반복해, 원주율이 3.1415926과 3.1415927 사이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소수점 일곱째 자리까지 맞는 이 값은 그 뒤로도 약 900년 동안 어느 나라에서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쉽게 쓸 수 있도록 밀률(355/113)이라는 분수로도 남겼는데, 원주율에 매우 가까운 간단한 분수로 지금도 감탄을 자아낸다.
【남은 것】
새 역법(대명력)을 만들어 기존 오차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보수적인 신하들의 반대로 생전에 채택되지 못했다. 아들이 계속 청원한 끝에 그가 죽고 10년 뒤에야 실제로 쓰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