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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종교전쟁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5건

위그노 전쟁1562 – 1598
프랑스 가톨릭 vs 위그노(개신교)

칼뱅파가 귀족과 도시로 퍼지자 기즈 가문이 바시에서 예배 중인 위그노를 학살했다. 왕권이 약한 틈에 종교와 귀족 파벌 싸움이 겹쳤다.

바시 학살 1562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1572세 앙리의 전쟁 1587낭트 칙령 1598

결과여덟 차례 내전 끝에 개신교도였던 앙리 4세가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며 개종해 왕이 됐고 낭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1685년 루이 14세가 이를 폐지하자 위그노 20만이 떠났다.

36년 · 낭트 칙령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 – 1648
네덜란드 북부 7주 vs 스페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과세와 가톨릭 강요에 개신교(칼뱅파)가 강한 네덜란드 북부 주들이 반발했다.

레이던 공방전 1574위트레흐트 동맹 1579

결과8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다. 흔히 '80년 전쟁'으로도 불린다.

80년 · 네덜란드 독립, 해상 무역 강국으로 성장
시베리아 정복1581 – 1639
러시아 코사크 vs 시비르 칸국·시베리아 원주민

우랄산맥 동쪽의 모피(담비 가죽)를 노린 스트로가노프 상단이 코사크 두목 예르마크를 고용해 시비르 칸국을 쳤다.

추바시곶 전투 1582카슐리크 함락 1582이르티시강 야습 1585

결과예르마크는 1585년 야습으로 죽었지만 정복은 멈추지 않았다. 코사크들은 강을 따라 요새(오스트로그)를 하나씩 세우며 동쪽으로 밀고 나가 1639년 태평양에 닿았다 — 우랄을 넘은 지 60년도 안 된 때다.

58년 · 대륙 하나를 가로지름
영국-에스파냐 전쟁과 무적함대1585 – 1604
잉글랜드 vs 에스파냐

엘리자베스가 네덜란드 반란을 돕고 드레이크의 해적질을 눈감으며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하자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결정했다.

카디스 습격 1587무적함대 출항 1588.5그라블린 해전 1588.8런던 조약 1604

결과130척 함대는 영국 해협에서 화공선과 빠른 영국 함선에 흩어졌고 스코틀랜드를 돌아 귀환하다 폭풍에 절반을 잃었다. 잉글랜드는 해양 강국의 길로, 에스파냐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19년 · 무적함대 격파
임진왜란1592 – 1598
조선·명 vs 일본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가 내부의 무력을 밖으로 돌리려 했다. 명을 치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 요구했다.

부산진 1592한산도 1592진주성 1593명량 1597노량 1598

결과7년 만에 물러갔다. 조선은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은 국력을 소진해 청에게 밀린다.

7년 · 경지와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6명

이순신장군1592 · 삼도수군통제사
1545 – 1598

남해의 제해권을 지켜 일본군의 보급선을 끊었다. 23전 23승.

  • 옥포·한산도 대첩
  • 명량에서 13척으로 승리
  • 노량에서 전사
유성룡정치1592 · 임진왜란의 재상
1542 – 1607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파직되어 고향에서 징비록을 썼다 — 다시는 이러지 말자는 기록이다.

  • 이순신·권율 천거
  • 훈련도감 설치
  • 징비록 — 스스로를 벌하는 기록
권율장군1593 · 행주대첩의 장군
1537 – 1599

행주산성에서 3천으로 3만을 막았다.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 1593년 행주대첩
  • 이치 전투에서 전라도를 지킴
  • 도원수로 조선군 전체를 지휘
도요토미 히데요시정치1590 ·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한 태합
1537 – 1598

농민의 아들로 오다 노부나가의 짚신을 들다가 천하인이 됐다. 검지령으로 무사와 농민을 갈랐고,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참화에 빠뜨렸다.

  • 야마자키에서 아케치 격파, 노부나가 계승(1582)
  • 일본 통일(1590), 검지령·도수령
  •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
엘리자베스 1세정치1588 · 잉글랜드 여왕
1533 – 1603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45년을 다스렸다. 그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글을 썼다.

  • 무적함대 격퇴 1588
  • 국교회를 정착시킴
  • 셰익스피어가 글을 쓴 시대
펠리페 2세정치1588 · 무적함대를 보내고 네덜란드를 잃은 에스파냐 왕
1527 – 1598, 재위 1556 – 1598

신대륙 은으로 유럽 최강국을 다스렸으나 종교전쟁에 모든 것을 쏟았다. 엘리자베스를 치러 보낸 함대가 부서졌다.

  • 레판토 해전 승리(1571), 포르투갈 병합(1580)
  • 네덜란드 독립전쟁 유발
  • 무적함대 패배(1588)
아바스 1세정치1598 · 이스파한을 「세계의 절반」으로 만든 사파비의 대왕
1571 – 1629, 재위 1588 – 1629

키질바시 부족의 힘을 꺾고 노예 병사와 화약 무기로 군대를 재편했다. 오스만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 이스파한을 수도로 꾸몄다.

  • 이스파한 천도(1598)
  • 오스만·우즈베크 격퇴, 바그다드 탈환
  • 굴람 군단 창설, 유럽·아르메니아 상인 유치
셰익스피어예술1600 · 「햄릿」「리어왕」의 극작가, 영어의 조각가
1564 – 1616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인간의 모든 얼굴을 무대에 올렸고 영어에 수천 개의 표현을 남겼다.

  • 「로미오와 줄리엣」「햄릿」「맥베스」
  • 글로브 극장의 배우 겸 극작가
  • 1623년 「퍼스트 폴리오」 출간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장군1581 · 우랄 너머로 러시아를 연 코사크
1532?년 무렵 – 1585

모피 상단에 고용된 코사크 두목으로, 화승총 부대 800명 남짓으로 시비르 칸국을 무너뜨렸다. 4년 뒤 야습을 받아 강에 빠져 죽었다.

  • 1582년 추바시곶 전투에서 병력 차를 화력으로 뒤집음
  • 시비르 칸국의 도읍 카슐리크 점령
  • 죽음 뒤에도 정복은 멈추지 않아 60년 만에 태평양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정치1603 · 260년 에도 막부를 연 쇼군
1543 – 1616

인질로 자라 인내로 천하를 얻었다. 세키가하라에서 이기고 오사카에서 히데요시의 아들을 없앤 뒤 일본을 250년 평화로 묶었다.

  •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1600)
  • 에도 막부 개창(1603)
  • 오사카 전투, 도요토미 가문 멸망(1615)
아크바르정치1580 · 무굴을 인도의 나라로 만든 황제
1542 – 1605

열세 살에 즉위해 49년을 다스렸다. 비무슬림에게 물리던 인두세를 없애고 힌두 가문을 고위직에 썼다. 글을 못 읽었는데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고 기억했다.

  • 지즈야 폐지
  • 궁정에 여러 종교를 불러 토론시킴
  • 실제 수확에 맞춘 세제
세르반테스예술1605 · 「돈키호테」로 근대 소설을 연 작가
1547 – 1616

레판토에서 왼손을 잃고 알제에서 5년을 노예로 살았다. 감옥에서 구상한 미친 기사 이야기가 세계 문학의 첫 근대 소설이 됐다.

  • 레판토 해전 참전(1571), 왼손 부상
  • 알제 억류 5년
  • 「돈키호테」 1부(1605)·2부(1615)
오다 노부나가장군1575 · 전국시대를 끝내기 시작한 사람
1534 – 1582

조총 3천 정을 줄지어 세워 번갈아 쏘게 했다. 기병 돌격이 통하지 않게 된 날이다. 사원 세력을 무력으로 눌러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던 것을 끊었다.

  • 나가시노 — 조총 삼단 사격
  • 히에이잔 불태움
  • 부하 아케치에게 살해
케플러과학1609 · 타원 궤도를 찾은 천문학자
1571 – 1630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로 행성이 타원을 그리며 돈다는 것을 밝혔다.

  • 행성운동 제1·2법칙 1609
  • 제3법칙 1619
  • 뉴턴 만유인력의 토대
이이사상1575 · 퇴계와 쌍벽을 이룬 성리학자이자 개혁가(율곡)
1536 – 1584

기(氣)의 역할을 중시하는 주기론을 세우는 한편, 대동법과 십만양병설 등 현실 개혁안을 제시했다.

  • 주기론 정립, 「성학집요」 저술
  • 수미법(대동법의 원형) 등 개혁안 제시
  • 십만양병설로 국방 강화 주장
허준과학1610 · 동의보감을 쓴 의원
1539 – 1615

서자 출신으로 어의가 됐다. 전쟁으로 약재가 끊긴 나라에서 우리 땅에서 나는 약으로 고치는 법을 정리했다.

  • 동의보감 25권 — 15년에 걸쳐 완성
  •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백성이 스스로 찾아 쓸 수 있게 향약 이름을 한글로 달았다

그 무렵의 사건

1600
영국 동인도회사
국가가 아닌 회사가 아시아 무역과 통치를 대행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아닌 회사가 무역과 통치를 대행하기 시작했다.
1600
다호메이 왕국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던 다호메이 왕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정예 근위 부대(흔히 '다호메이 아마존'이라 불림)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의 깊은 관여로 유명했다.
다호메이는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유럽 노예 상인에게 팔아 화기와 물자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군사력을 키웠고, 이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서아프리카 내부의 정치·군사 구조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왕을 호위하며 실제 전투에도 참여한 여성 정예부대는 당대 유럽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892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프랑스의 보호령이 됐다.
1602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사실상 준국가적 권한을 가진 무역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설립됐다.
여러 소규모 무역상사를 하나로 통합해 만들어진 이 회사는 자체 군대와 함대를 두고 조약을 맺을 권한까지 가진, 오늘날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향신료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오늘날 인도네시아 지역에 광범위한 식민 지배 체제를 구축했고, 이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이어졌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이 회사 주식이 거래된 것은 근대 주식시장의 출발점 중 하나로도 꼽힌다.
1603
에도 막부 성립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260년 평화와 쇄국의 시작이다.
세키가하라에서 이긴 이에야스는 천황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아 에도에 정부를 세웠고 2년 만에 아들에게 물려줘 세습을 굳혔다. 다이묘는 격년으로 에도에 살아야 했고 처자는 인질로 남았다. 1630년대에는 기독교를 금하고 해외 도항을 막아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중국 상인만 남겼다. 이 긴 평화 속에 조닌 문화와 우키요에가 꽃폈다.
1608
대동법 시행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베·동전으로 통일해 걷은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되며 조세 제도를 크게 바꿨다.
조선 전기의 공납 제도는 각 고을에 정해진 특산물을 바치게 했는데,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배정되거나 상인(방납업자)이 대신 납부하며 폭리를 취하는 등 폐단이 극심했다. 이이 등이 대안으로 수미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파탄 나자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부터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대동법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대동미)이나 베, 동전을 걷어 국가가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도록 했는데, 이는 토지를 많이 가진 지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었다. 지주들의 반발로 확대에 시간이 걸려, 전국 시행까지는 100년이 걸려 숙종 34년(1708)에야 완료되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대는 공인이라는 어용상인이 성장했고,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575
붕당의 형성
선조 때 사림이 정계를 장악한 뒤, 이조 전랑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며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다.
여러 사화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세력을 키운 사림은 선조 즉위 이후 마침내 훈구파를 밀어내고 중앙 정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사림은 이조 전랑(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요직)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1575년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으로 나뉘었다(붕당의 시작). 동인은 다시 정여립 모반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라졌다. 붕당은 처음에는 학문적 입장과 정책 노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정치 집단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상대 붕당을 배척하는 당쟁으로 흐르는 경우도 잦아, 이후 조선 후기 정치사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이순신

인물 · 1592 · 23전 23승의 조건

남해의 제해권을 지켜 일본군의 보급선을 끊었다. 23전 23승.

【그때 그 자리】 조선의 수군은 임진왜란 직전까지 존폐 논의의 대상이었다. 왜구가 잦아들면서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치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은 개전 1년 2개월 전이다.

그 1년 동안 그가 한 일이 뒤를 갈랐다. 판옥선을 정비하고 거북선을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남해의 물길과 조류를 조사했다. 「난중일기」에는 어느 목이 언제 물이 세지는지가 반복해 적혀 있다.

【왜 이겼나 — 배의 차이】 일본 수군의 주력은 안택선과 관선이었다. 가볍고 빨라 적선에 붙어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 데 맞춰져 있었다. 센고쿠 시대 내내 그렇게 싸웠다.

조선의 판옥선은 반대였다. 무겁고 바닥이 평평해 제자리에서 회전할 수 있었고, 갑판이 높아 올라타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배에 화포를 실을 수 있었다. 일본 배는 구조가 약해 큰 포를 쏘면 배가 상했다.

그래서 이순신의 전술은 늘 같았다 — 붙기 전에 부순다. 거리를 두고 천자·지자총통으로 때리고, 적이 다가오면 회전해 다른 면의 포를 쐈다.

【지형을 읽는 법】 한산도에서는 좁은 견내량에 있던 적을 넓은 바다로 끌어냈다. 좁은 곳에서는 판옥선의 회전이 안 되고 적선이 흩어져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끌어낸 뒤 학익진으로 감쌌다. 59척을 부쉈다.

명량에서는 정반대로 했다. 배가 13척뿐이었으므로 넓은 데서는 포위당한다. 그래서 울돌목으로 끌어들였다. 폭 300m에 조류가 초속 6m로 흐르는 곳이다. 한 번에 몇 척만 들어올 수 있고, 물때가 바뀌면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같은 사람이 정반대의 진을 쓴 것은 지형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의 조건】 1597년 그는 파직되고 고문받은 뒤 백의종군했다. 출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그 명령은 일본의 역정보에 따른 것이었다.

후임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해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됐을 때 남은 배가 12척이었다. 조정이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치라 하자 답한 것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였다.

【남은 것】 그가 지킨 것은 배가 아니라 보급선이었다. 서해가 막히면서 일본군은 육지에서 이겨도 먹을 것이 오지 않았다. 전쟁의 향방이 바다에서 결정됐다.

1598년 노량에서 물러가는 일본 함대를 치다 전사했다.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이 「난중일기」가 아니라 조카 이분이 쓴 「행록」에 나온다. 「난중일기」는 7년치가 거의 그대로 남았다 — 전쟁을 치른 사령관이 매일 쓴 일기가 온전히 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지도에서 보기: 153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유성룡 권율 도요토미 히데요시 엘리자베스 1세 펠리페 2세 아바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