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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왜칼뱅파가 귀족과 도시로 퍼지자 기즈 가문이 바시에서 예배 중인 위그노를 학살했다. 왕권이 약한 틈에 종교와 귀족 파벌 싸움이 겹쳤다.
결과여덟 차례 내전 끝에 개신교도였던 앙리 4세가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며 개종해 왕이 됐고 낭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1685년 루이 14세가 이를 폐지하자 위그노 20만이 떠났다.
왜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과세와 가톨릭 강요에 개신교(칼뱅파)가 강한 네덜란드 북부 주들이 반발했다.
결과8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다. 흔히 '80년 전쟁'으로도 불린다.
왜우랄산맥 동쪽의 모피(담비 가죽)를 노린 스트로가노프 상단이 코사크 두목 예르마크를 고용해 시비르 칸국을 쳤다.
결과예르마크는 1585년 야습으로 죽었지만 정복은 멈추지 않았다. 코사크들은 강을 따라 요새(오스트로그)를 하나씩 세우며 동쪽으로 밀고 나가 1639년 태평양에 닿았다 — 우랄을 넘은 지 60년도 안 된 때다.
왜엘리자베스가 네덜란드 반란을 돕고 드레이크의 해적질을 눈감으며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하자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결정했다.
결과130척 함대는 영국 해협에서 화공선과 빠른 영국 함선에 흩어졌고 스코틀랜드를 돌아 귀환하다 폭풍에 절반을 잃었다. 잉글랜드는 해양 강국의 길로, 에스파냐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45년을 다스렸다. 그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글을 썼다.
신대륙 은으로 유럽 최강국을 다스렸으나 종교전쟁에 모든 것을 쏟았다. 엘리자베스를 치러 보낸 함대가 부서졌다.
농민의 아들로 오다 노부나가의 짚신을 들다가 천하인이 됐다. 검지령으로 무사와 농민을 갈랐고,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참화에 빠뜨렸다.
남해의 제해권을 지켜 일본군의 보급선을 끊었다. 23전 23승.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파직되어 고향에서 징비록을 썼다 — 다시는 이러지 말자는 기록이다.
행주산성에서 3천으로 3만을 막았다.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모피 상단에 고용된 코사크 두목으로, 화승총 부대 800명 남짓으로 시비르 칸국을 무너뜨렸다. 4년 뒤 야습을 받아 강에 빠져 죽었다.
열세 살에 즉위해 49년을 다스렸다. 비무슬림에게 물리던 인두세를 없애고 힌두 가문을 고위직에 썼다. 글을 못 읽었는데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고 기억했다.
키질바시 부족의 힘을 꺾고 노예 병사와 화약 무기로 군대를 재편했다. 오스만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 이스파한을 수도로 꾸몄다.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인간의 모든 얼굴을 무대에 올렸고 영어에 수천 개의 표현을 남겼다.
조총 3천 정을 줄지어 세워 번갈아 쏘게 했다. 기병 돌격이 통하지 않게 된 날이다. 사원 세력을 무력으로 눌러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던 것을 끊었다.
기(氣)의 역할을 중시하는 주기론을 세우는 한편, 대동법과 십만양병설 등 현실 개혁안을 제시했다.
인질로 자라 인내로 천하를 얻었다. 세키가하라에서 이기고 오사카에서 히데요시의 아들을 없앤 뒤 일본을 250년 평화로 묶었다.
레판토에서 왼손을 잃고 알제에서 5년을 노예로 살았다. 감옥에서 구상한 미친 기사 이야기가 세계 문학의 첫 근대 소설이 됐다.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로 행성이 타원을 그리며 돈다는 것을 밝혔다.
서자 출신으로 어의가 됐다. 전쟁으로 약재가 끊긴 나라에서 우리 땅에서 나는 약으로 고치는 법을 정리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인물 · 1588 · 결혼하지 않은 여왕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45년을 다스렸다. 그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글을 썼다.
【그때 그 자리】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이다. 세 살에 어머니가 처형됐고 서녀로 강등됐다.
이복언니 메리 1세 때는 런던탑에 갇혔다. 개신교도였기 때문이다.
1558년 스물다섯에 왕이 됐을 때 잉글랜드는 가난하고 갈라져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종교가 가장 큰 문제였다. 헨리 8세가 로마와 갈라섰고, 에드워드 6세가 개신교로, 메리 1세가 다시 가톨릭으로 돌렸다. 그때마다 사람이 죽었다.
엘리자베스는 가운데를 골랐다. 국교회를 세우되 예배 형식은 가톨릭의 것을 상당히 남겼다.
「나는 사람의 마음에 창을 내고 싶지 않다」 했다. 겉으로 국교회 예배에 나오면 속으로 무엇을 믿든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결혼하지 않았다. 구혼자가 줄을 섰다 —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 프랑스 왕자들, 국내 귀족들.
결혼은 곧 외교였고, 누구와 하든 한쪽에 서는 일이었다. 하지 않음으로써 협상 카드를 평생 쥐었다.
「나는 이미 잉글랜드와 결혼했다」 했다.
1587년 사촌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했다. 19년을 가둬 두다 음모가 드러나자 서명했다.
1588년 에스파냐 무적함대가 왔다. 작고 빠른 배와 화공선으로 흩어 놓았고 폭풍이 나머지를 했다.
틸버리에서 병사들 앞에 갑옷을 입고 말했다. 「나는 연약한 여인의 몸을 가졌으나, 왕의 심장과 배짱을 가졌다.」
【그래서】 45년을 다스렸다. 그 사이 셰익스피어와 말로가 글을 썼고, 드레이크가 세계를 일주했으며, 동인도회사가 세워졌다.
동시에 그늘도 있었다.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눌렀고, 노예무역이 이때 시작됐으며, 가톨릭 사제 처형이 이어졌다.
【남은 것】 후사가 없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했다. 두 왕국이 한 사람 아래 묶인 것이 뒤에 연합왕국이 된다.
그가 처형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 그 왕이다.
지도에서 보기: 153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펠리페 2세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순신 유성룡 권율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