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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해당 없음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736 · 다리를 건너는 문제에서 새 수학이 나오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그때 그 자리】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강 위 일곱 개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 모든 다리를 지나갈 수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나】
스위스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과학아카데미에서 활동했다. 평생 눈이 거의 안 보이게 됐지만 계산은 머릿속으로 이어갔다.
【어떻게 흘렀나】
1736년, 다리의 실제 위치나 거리는 무시하고 땅과 다리를 점과 선으로만 단순화해 그런 경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훗날 그래프 이론이라는 수학 분야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평생 9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겨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로 꼽힌다. 지금 수학 표기법(함수 f(x), 원주율 π, 자연상수 e, 허수 단위 i 등) 다수가 그가 퍼뜨린 것이다.
【남은 것】
이름이 붙은 정리와 공식이 수학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어 「오일러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에도 죽기 직전까지 계산과 저술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