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토스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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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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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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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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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 – BC 241
로마 vs 카르타고

시칠리아의 용병 집단이 로마와 카르타고 양쪽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탈리아를 막 통일한 로마가 처음으로 바다 건너에 발을 들였다.

밀라이 BC 260에크노무스 BC 256아이가테스 제도 BC 241

결과로마가 함대를 새로 만들어 이겼다. 시칠리아가 첫 해외 속주가 됐다.

23년 · 바다를 몰랐던 로마가 함대 700척 가까이 잃으며 배웠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에라토스테네스과학BC 240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
BC 276 무렵 – BC 194 무렵

그림자만으로 지구 둘레를 재다

  • 그림자 각도로 지구 둘레 계산
  • 오차 몇 % 이내의 정확도
  • 지리학이라는 말을 처음 씀
한비자사상BC 233 · 법·술·세로 군주의 통치술을 정리한 법가의 완성자
BC 280 무렵 – BC 233

인간은 이익으로 움직이니 상과 벌로 다스려라. 진시황이 그의 글을 읽고 만나고 싶어 했으나 동문 이사의 모함으로 옥사했다.

  • 「한비자」 55편
  • 법(法)·술(術)·세(勢)의 종합
  • 진에서 이사의 참소로 사사
순자사상BC 250 · 성악설과 예치를 말한 유가의 현실주의자
BC 310 무렵 – BC 235 무렵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예와 학문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의 제자 한비와 이사가 법가로 갔다.

  • 성악설 — 맹자의 성선설 반박
  • 예(禮)와 교육에 의한 교화
  • 「천론」 — 하늘은 인간사에 무관심
진시황정치BC 221 · 최초의 황제
BC 259 – BC 210

흩어진 전국을 하나로 묶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 '황제'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된다.

  • 전국을 통일해 최초의 황제가 됨 BC 221
  • 문자·도량형·화폐를 하나로
  • 만리장성 연결과 병마용
아소카정치BC 260 · 이기고 나서 후회한 왕
BC 304 – BC 232

칼링가 정복에서 10만이 죽는 것을 보고 무력을 버렸다. 이후 불교를 후원하고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반성을 새겼다.

  • 칼링가 전쟁 후 무력 포기 선언
  • 암벽 칙령 — 왕이 자기 잘못을 새긴 드문 기록
  • 불교를 스리랑카·중앙아시아로 전파
한니발장군BC 216 · 코끼리로 알프스를 넘은 사람
BC 247 – BC 183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 알프스 도하 — 코끼리 37마리와 함께
  • 칸나이 BC 216 — 포위섬멸의 교과서
  • 자마에서 패한 뒤 망명지에서 자결

그 무렵의 사건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30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한곳에 모으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책을 모두 필사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여기서 지구 둘레를 오차 2%로 계산했고, 유클리드가 「원론」을 썼다.
BC 300
야요이 — 벼와 쇠가 건너오다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금속이 함께 건너갔다.
조몬의 채집 생활이 논농사로 바뀌었다. 벼와 청동기와 철기가 한반도를 거쳐 규슈로 들어갔다. 사람이 모이고 잉여가 생기자 다투기 시작했고, 그 위에서 야마타이 같은 나라가 선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에라토스테네스

인물 · BC 240 · 그림자만으로 잰 지구 둘레

그림자만으로 지구 둘레를 재다

【그때 그 자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그리스 학자들 사이에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그 크기는 아무도 재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으로, 이집트 시에네(지금의 아스완)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우물 바닥까지 해가 비쳐 그림자가 전혀 안 생긴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떻게 흘렀나】

같은 날 같은 시각 알렉산드리아에서 막대 그림자가 약간 기울어 있다는 것을 재서 두 도시 사이의 각도 차이(약 7.2도)를 계산했다. 두 도시 사이 거리에 이 각도 비율을 곱해 지구 전체 둘레를 추정했다.

【그래서】

그가 계산한 값은 실제 지구 둘레와 비교해 오차가 몇 퍼센트 안팎에 불과했다 — 자를 갖고 우주로 나가지 않고도 그림자와 각도만으로 이만큼 정확히 잰 것이다.

【남은 것】

그가 쓴 거리 단위(스타디온)가 지금의 몇 미터인지 확실치 않아 오차 폭을 두고 약간의 논쟁이 있다. 그럼에도 이 실험은 관측과 기하학만으로 거대한 것을 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한비자 순자 진시황 아소카 한니발 아르키메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