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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왜철제 무기와 상비군, 공성탑을 갖춘 최초의 군사국가가 근동을 통째로 삼키려 했다.
결과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하나로 묶었지만, 정복지 주민을 통째로 옮겨 심는 공포 통치가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결국 바빌로니아·메디아 연합에 지워졌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대왕. 잔혹한 정복으로 이름났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드문 왕이었고 니네베에 3만 점의 점토판을 모았다.
해당 없음
인물 · BC 650 · 도서관을 만든 정복자
아시리아의 마지막 대왕. 잔혹한 정복으로 이름났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드문 왕이었고 니네베에 3만 점의 점토판을 모았다.
【그때 그 자리】 BC 7세기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큰 왕이다. 영토가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갔다.
왕자 여럿 가운데 뽑혔다. 형 샤마시슘우킨은 바빌론 왕으로 앉혔다.
【왜 그렇게 됐나】 그가 특이한 것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는 점이다. 당시 왕은 대개 그러지 않았다 — 서기가 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남겼다. 「나는 필경사의 기술을 배웠다. (…) 대홍수 이전의 돌에 새겨진 글을 읽을 수 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푼다.」
【어떻게 흘렀나】 니네베에 도서관을 지었다. 제국 전역에 사람을 보내 점토판을 모으고, 없으면 베껴 오게 했다.
3만 점이 넘는 점토판이 발굴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체계적 도서관으로 꼽힌다.
그 안에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나왔다. 1872년 조지 스미스가 그 판을 읽다가 대홍수와 방주 이야기를 발견했다 — 성경보다 오래된 홍수 이야기였다.
너무 흥분해 방 안에서 옷을 벗고 뛰어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의학·천문·점술·사전·문학이 함께 있었다. 수메르어-아카드어 대역 사전도 있다. 사라진 언어들을 오늘 읽을 수 있는 것이 상당 부분 이 도서관 덕이다.
【그래서】 동시에 잔인했다. 궁전 부조에 정복 장면이 가득하다. 포로의 가죽을 벗기고 혀를 뽑고 목을 매다는 장면을 자랑스럽게 새겼다.
형이 바빌론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2년 포위 끝에 굶겨 항복시켰다. 형은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
엘람을 쳐서 수사를 부수고 「그 땅에 소금과 가시덤불을 뿌렸다」고 적었다.
가장 유명한 부조가 사자 사냥이다. 화살 맞은 암사자가 뒷다리를 끌며 포효하는 장면 — 대영박물관에 있고, 고대 미술 최고의 동물 표현으로 꼽힌다.
【남은 것】 그가 죽고 20년쯤 뒤 BC 612년 니네베가 함락됐다. 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연합군이었다.
도서관도 불탔다. 그런데 점토판은 불에 구워지면 더 단단해진다. 궁전이 무너지며 흙에 묻혔고, 2,500년 뒤 거의 그대로 나왔다.
제국은 사라지고 도서관이 남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