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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아테네가 부채 노예로 무너지기 직전 조정자로 뽑혔다. 부자와 빈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내전은 막았다.
43년을 다스리며 바빌론을 당대 최대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슈타르 문과 공중정원 전설이 그의 것이다.
해당 없음
인물 · BC 594 · 빚으로 사람을 사지 못하게 하다
아테네가 부채 노예로 무너지기 직전 조정자로 뽑혔다. 부자와 빈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내전은 막았다.
【그때 그 자리】 BC 6세기 초 아테네. 가난한 농민이 땅을 담보로 빚을 지고, 갚지 못하면 자기 몸을 팔아 노예가 됐다. 아테네 시민이 아테네 시민의 노예가 되는 일이 흔했다.
귀족과 평민의 다툼이 내전 직전까지 갔다. 양쪽이 한 사람에게 전권을 맡기기로 했다.
【왜 그렇게 됐나】 솔론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거운 짐을 벗기는 것(세이삭테이아)」이다.
빚을 없애고, 몸을 담보로 빚지는 것을 금지했으며, 이미 노예가 된 이들을 사서 데려왔다. 땅에 박혀 있던 저당 표석을 뽑았다.
【어떻게 흘렀나】 재산에 따라 시민을 넷으로 나눴다. 재산이 많을수록 높은 관직에 나갈 수 있지만, 그만큼 군역과 세금도 무겁게 했다.
혈통이 아니라 재산으로 나눈 것이 핵심이다. 귀족이 아니어도 부유하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민회를 모든 시민에게 열고, 400인 평의회를 두고, 누구나 부당한 판결에 항소할 수 있는 민중법정을 만들었다.
【그래서】 양쪽 다 불만이었다. 귀족은 너무 많이 내줬다 하고 평민은 땅을 다시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솔론은 10년간 아테네를 떠났다. 자기가 만든 법을 자기가 고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돌아왔을 때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이 서 있었다.
【남은 것】 그가 만든 것은 민주정이 아니다. 재산에 따른 차등이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시민은 빚 때문에 노예가 될 수 없다」는 선을 그었다. 그 선이 있었기에 100년 뒤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가 그 위에 민주정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스 7현인의 하나로 꼽힌다. 「어느 나라가 가장 잘 다스려지는가」라는 물음에 「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해를 입은 사람과 똑같이 분노하는 나라」라고 답했다고 전한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네부카드네자르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