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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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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43 – 84
로마 vs 브리튼 부족

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메드웨이 43부디카의 반란 60몬스 그라우피우스 83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41년 · 제국의 서북 한계선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5명

바울사상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AD 5 – AD 67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 할례 없이도 신자가 될 수 있게 함
  • 세 차례 전도 여행 — 지중해 전역
  • 로마에서 처형
네로정치64 ·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 박해로 기억되는 황제
37 – 68, 재위 54 – 68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 로마 대화재(64)와 기독교도 처형
  •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 건설
  • 군단 반란으로 몰락,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종말
김수로왕정치42 ·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나 금관가야를 세우다
42 – 199(전승)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 구지가 설화 속 건국 시조
  • 금관가야 초기 전성기 이끎
  • 낙동강 하구 철 생산·해상 교역 기반 확립
광무제정치36 · 왕망의 신을 무너뜨리고 한을 다시 세운 황제
BC 5 – AD 57, 재위 25 – 57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 곤양 전투 승리(23), 왕망 정권 붕괴
  • 낙양 도읍, 후한 건국(25)
  • 노비 해방령과 세금 경감
예수사상30 · 가장 많은 사람이 따른 이름
BC 4 – AD 30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 산상수훈 — 약한 자가 복이 있다
  • 십자가형과 부활 신앙
  • 연도를 세는 기준이 됨

그 무렵의 사건

79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30
예수의 처형
로마 속주 유대에서 벌어진 처형이 세계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바울

인물 · 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때 그 자리】

1세기 초 유대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성전 제사를 중심으로 한 사두가이, 율법 해석에 엄격한 바리사이, 광야로 물러난 에세네, 무장 저항을 주장한 열심당이 있었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는 처음에 이 가운데 하나의 분파로 보였다. 유대인이 유대교 안에서 메시아가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속 갔고 유대 율법을 지켰다. 이대로였다면 이 종교는 유대교의 한 갈래로 남았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사울은 소아시아 타르수스에서 난 유대인이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그리스어를 했으며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에게 배운 바리사이였다.

그는 이 새 무리를 박해하는 쪽이었다.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가 겪었다고 전하는 일이 모든 것을 바꿨다. 빛을 보고 사흘간 눈이 멀었다가 회심했다.

【어떻게 흘렀나】

그가 정리한 것이 결정적이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신자가 되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할례를 받고 음식 규정을 지켜야 하는가.

성인 남성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당시 큰 장벽이었다. 음식 규정도 그렇다. 이것을 요구하면 이 종교는 유대인의 것으로 남는다.

바울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례는 필요 없다.

예루살렘의 지도부와 부딪쳤다. 베드로와도 안티오키아에서 정면으로 다퉜다. 50년 무렵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울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이 한 번의 결정이 유대교의 한 분파를 세계 종교로 바꿨다.

그는 세 차례 전도 여행을 했다.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돌며 도시마다 공동체를 세웠다. 로마의 도로와 치안, 그리스어라는 공용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회당이 그 통로가 됐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같은 것들이다. 이 편지들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복음서보다 먼저 쓰였다.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다녔다. 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했다고 스스로 적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재판을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가 있었다. 그는 그 권리를 써서 로마로 갔다. 60년대에 그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그가 세운 공동체들이 지중해 전역에 퍼졌다. 300년 뒤 로마의 국교가 된다.

【남은 것】

평가가 갈린다.

기독교를 만든 두 번째 창시자라는 평이 있다. 예수가 말한 것과 바울이 정리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없었다면 이 종교가 세계로 나가지 못했으리라는 평이 함께 있다.

그의 편지에는 여성에 관한 대목이 있어 오래 논쟁이 됐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썼다. 앞의 구절이 후대에 끼어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대목은 종교 밖에서도 널리 읽힌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지금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낭독되는 글 가운데 하나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네로 김수로왕 광무제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