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때 그 자리】
1세기 초 유대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성전 제사를 중심으로 한 사두가이, 율법 해석에 엄격한 바리사이, 광야로 물러난 에세네, 무장 저항을 주장한 열심당이 있었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는 처음에 이 가운데 하나의 분파로 보였다. 유대인이 유대교 안에서 메시아가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속 갔고 유대 율법을 지켰다. 이대로였다면 이 종교는 유대교의 한 갈래로 남았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사울은 소아시아 타르수스에서 난 유대인이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그리스어를 했으며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에게 배운 바리사이였다.
그는 이 새 무리를 박해하는 쪽이었다. 스테파노가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가 겪었다고 전하는 일이 모든 것을 바꿨다. 빛을 보고 사흘간 눈이 멀었다가 회심했다.
【어떻게 흘렀나】
그가 정리한 것이 결정적이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신자가 되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할례를 받고 음식 규정을 지켜야 하는가.
성인 남성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당시 큰 장벽이었다. 음식 규정도 그렇다. 이것을 요구하면 이 종교는 유대인의 것으로 남는다.
바울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례는 필요 없다.
예루살렘의 지도부와 부딪쳤다. 베드로와도 안티오키아에서 정면으로 다퉜다. 50년 무렵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울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이 한 번의 결정이 유대교의 한 분파를 세계 종교로 바꿨다.
그는 세 차례 전도 여행을 했다.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돌며 도시마다 공동체를 세웠다. 로마의 도로와 치안, 그리스어라는 공용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회당이 그 통로가 됐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같은 것들이다. 이 편지들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복음서보다 먼저 쓰였다.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다녔다. 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했다고 스스로 적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재판을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가 있었다. 그는 그 권리를 써서 로마로 갔다. 60년대에 그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그가 세운 공동체들이 지중해 전역에 퍼졌다. 300년 뒤 로마의 국교가 된다.
【남은 것】
평가가 갈린다.
기독교를 만든 두 번째 창시자라는 평이 있다. 예수가 말한 것과 바울이 정리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없었다면 이 종교가 세계로 나가지 못했으리라는 평이 함께 있다.
그의 편지에는 여성에 관한 대목이 있어 오래 논쟁이 됐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썼다. 앞의 구절이 후대에 끼어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대목은 종교 밖에서도 널리 읽힌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지금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낭독되는 글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