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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해당 없음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30 · 가장 낮은 데서 시작한 이야기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그때 그 자리】 로마가 지배하던 유대. 헤롯이 왕이었고 그 뒤 총독이 다스렸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다. 로마를 몰아내고 다윗의 왕국을 되살릴 왕을 기다린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 집안에서 자랐다. 서른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쯤이다. 그동안 한 말이 복음서에 남았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쳤고, 세리와 창녀와 함께 밥을 먹었다.
【어떻게 흘렀나】 유대 지도층이 그를 위험하게 보았다. 성전에서 환전상의 상을 뒤엎은 일이 결정적이었다 — 성전 경제를 건드린 것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자처했다는 것, 곧 반역이다. 십자가는 반역자와 노예에게 쓰던 형벌이었다.
제자들이 흩어졌다. 그런데 사흘 뒤 부활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흩어졌던 이들이 돌아와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울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박해하던 사람이다.
그가 유대인만의 종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순간 지중해 전체로 갈 수 있게 됐다.
【남은 것】 300년 뒤 박해하던 로마가 그것을 국교로 삼는다. 지금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그 이름을 부른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나눠 보는 연구가 19세기부터 이어졌다. 그가 실재했다는 데는 학계에 이견이 거의 없다 — 타키투스와 요세푸스 같은 비기독교 사료에도 나온다.
가르친 기간이 3년이고, 남긴 글이 한 줄도 없으며, 서른셋에 처형됐다. 그 이야기가 2천 년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