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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절도사가 변방 병력을 독점하면서 중앙보다 강해졌다. 양귀비 일족과의 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결과8년 만에 진압했지만 당은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조사 인원이 5,300만에서 1,700만으로 줄었고, 이후 150년간 절도사가 사실상 독립한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760 · 안사의 난의 고통을 시로 남긴 시성(詩聖)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두보는 벼슬을 얻으려 장안에서 10년을 허비했고, 겨우 자리를 얻자 안사의 난이 터졌다. 반란군에 붙잡혀 함락된 장안에서 「춘망」을 썼다.
탈출해 숙종에게 갔으나 곧 좌천됐고, 관직을 버리고 성도로 가서 초당을 짓고 잠시 평온을 얻었다. 그의 시는 전쟁에 끌려가는 노인, 굶주린 아이,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말년에 배 위에서 떠돌다 동정호 근처에서 죽었다. 생전엔 이백만큼 유명하지 않았으나 송대 이후 「시성」으로 추앙됐고, 정조가 한글로 「두시언해」를 펴낼 만큼 조선에서도 사랑받았다.
지도에서 보기: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압둘 라흐만 1세 이백 카를 마르텔 간무 천황 카롤루스 하룬 알라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