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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바이킹에 밀려 습지로 도망쳤다가 다시 모아 이겼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 불린다.
열두 살에 당으로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다.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돌아온 신라에서는 골품제에 막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870 · 보헤미아의 도읍
블타바강이 굽이치는 언덕과 계곡에 자리했다. 9세기 무렵 프르셰미슬 왕조가 이곳에 성을 세우며 보헤미아 공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346년 즉위한 카를 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하면서 프라하를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 이 시기 카를교, 프라하 대학(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 등이 세워지며 도시가 크게 번성했다.
1618년 이 도시에서 벌어진 「프라하 창밖 투척 사건」(신교도 귀족들이 가톨릭 관리들을 성 창문 밖으로 던진 사건)이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 종교 갈등이 국지적 소요에서 유럽 전역을 휩쓴 장기전으로 번지는 계기가 이 도시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 체코슬로바키아, 지금의 체코를 거치며 정치적 지위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도시 자체는 큰 전쟁 피해 없이 옛 모습을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