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바이킹에 밀려 습지로 도망쳤다가 다시 모아 이겼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 불린다.
열두 살에 당으로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다.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돌아온 신라에서는 골품제에 막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859 · 루스의 상업 도시
볼호프강 유역, 발트해와 러시아 내륙을 잇는 교역로에 자리했다. 9세기 무렵 바랑기아인(루스)과 슬라브족이 결합하며 도시로 성장했고, 일부 연대기는 이곳을 「루스」 국가의 첫 근거지로 전한다(류리크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이라는 전승).
키예프 루스 시기에도 상업적으로 독자성이 강해, 12세기 이후로는 공(公)의 권한이 약하고 시민 의회(베체)가 강한 권력을 가진 「노브고로드 공화국」 체제로 발전했다 — 중세 러시아사에서 드문 공화정 사례로 꼽힌다.
1240년대 몽골의 침입 때는 습지 지형과 이반 3세의 선대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대응(주로 서방의 튜튼 기사단·스웨덴을 상대로 한 방어) 등으로 직접적인 파괴는 면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1478년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에게 정복되며 독자적인 공화정은 끝났고, 이후 러시아의 지방 도시로 편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