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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지명 · BC 100 · 당과 아바스가 부딪치고, 종이가 서쪽으로 갔다
751년 당과 아바스가 부딪친 곳. 종이가 서쪽으로 갔다
중앙아시아,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국경 지대의 탈라스강 유역이다. 실크로드 교역로가 지나는 지점이었다.
751년 이곳에서 당나라 서역 원정군(고선지 지휘)과 아바스 왕조(이슬람) 연합군이 크게 맞붙었다 — 「탈라스 전투」다. 당군이 크게 패했고, 이 패배와 거의 동시에 터진 안사의 난(755년)이 겹치며 당의 서역 진출은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당나라 병사 중 제지 기술자가 섞여 있어, 이를 계기로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로, 이어 유럽까지 전해졌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다만 최근 연구에서는 제지술이 이미 이보다 앞서 여러 경로로 서서히 퍼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돼, 탈라스 전투를 「제지술 전파의 유일한 계기」로 단정하기보다는 「상징적인 분기점」 정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