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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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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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세 개의 세계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바이킹 시대793 – 1066
노르드인 vs 유럽 각지

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린디스판 약탈 793파리 포위 885스탬퍼드 브리지 1066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273년 · 유럽 지도를 다시 그렸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장보고장군828 · 바다를 장악한 신라 사람
? – AD 846

당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뒤 돌아와 청해진을 세웠다. 신라·당·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손에 넣었다.

  • 청해진 설치 828 — 해적을 소탕
  • 신라·당·일본 삼각 무역 장악
  • 왕위 다툼에 개입했다가 암살
알콰리즈미과학820 · 대수학을 세운 사람
780 무렵 – 850 무렵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일했다.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알제브라가 그의 책 제목에서 왔다. 인도 숫자를 정리해 서쪽으로 넘긴 것도 그다.

  • 대수학 — 방정식을 푸는 법
  • 인도 숫자를 아랍에 소개
  • 그의 이름이 알고리즘이 됐다

그 무렵의 사건

830
지혜의 집
바그다드의 번역 기관. 그리스·인도·페르시아의 책이 아랍어로 옮겨져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칼리파 알마문은 꿈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았다며 번역을 후원했다고 전한다.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학자들이 갈레노스·유클리드·프톨레마이오스를 옮겼고, 알콰리즈미는 여기서 대수학과 인도 숫자를 정리했다. 이 책들이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지 않았다면 12세기 르네상스도 없었다. 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며 장서는 티그리스에 버려졌다.
818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발해는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850
화약의 발명
9세기 중국 당나라 시기, 불로장생약을 찾던 연금술사들이 우연히 화약을 발명했다. 처음엔 폭죽과 신호탄으로 쓰이다가 점차 무기로 발전했다.
숯·유황·초석(질산칼륨)을 섞어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려던 도교 연금술사들의 실험 기록에는 오히려 이 혼합물이 불이 붙고 폭발한다는, 당시로선 뜻밖의 위험한 발견이 남아 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화약은 화살에 불을 붙이는 무기, 이어 원시적인 폭탄과 화포로 점차 발전했다.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을 통해, 또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통해 이 기술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고, 이는 훗날 유럽에서 화약 무기가 중세 기사와 성벽 중심의 전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800
절벽 위의 마을
푸에블로 사람들이 벼랑에 집을 지었다.
콜로라도의 절벽 아래 오목한 곳에 돌집을 층층이 올렸다. 사다리를 걷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13세기 말 큰 가뭄이 오자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후손이 오늘의 호피와 주니다.
862
슬라브와 바랑기아
북쪽 사람을 불러다 다스리게 했다는 기록.
루스 원초 연대기는 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바다 건너 바랑기아인을 불렀다고 적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나중에 지배를 정당화하려 쓴 것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 길이 뒤에 키예프 루스가 된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청해진

지명 · 828 · 장보고가 세운 해상 기지. 완도

【그때 그 자리】

9세기 초 동아시아 바다에는 주인이 없었다. 당은 안사의 난 이후 지방 통제력을 잃었고, 신라는 왕위 다툼으로 흔들렸으며, 일본은 견당사를 드문드문 보낼 뿐이었다.

국가가 관리하지 못하는 바다에서 해적이 사람을 잡아 팔았다. 신라인이 특히 표적이었다. 당의 산둥과 강소 일대에 신라방과 신라원이 있을 만큼 신라 사람이 많이 나가 살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잡혀 온 노비였다.

【왜 그렇게 됐나】

장보고는 당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됐다. 외국인이 당의 군직에 오른 것이다. 거기서 신라인이 노비로 팔리는 것을 봤다.

828년 귀국해 흥덕왕에게 청해에 진을 두게 해 달라고 청했다. 왕이 군사 1만을 주었다고 기록됐다. 중앙에서 보낸 정규군이 아니라 그가 모은 사람들이었다.

자리를 완도로 고른 것은 계산이 있었다. 신라와 당과 일본을 잇는 항로가 이 앞을 지난다. 섬이 많아 배를 숨기고 지키기 좋다. 조류가 복잡해 현지인이 아니면 다니기 어렵다.

【어떻게 흘렀나】

청해진은 해적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삼각 무역의 중심이 됐다. 신라의 도자기와 인삼, 당의 비단과 차, 일본의 물품이 오갔다.

완도 장도에서 발굴이 이뤄졌다. 섬 둘레에 나무 기둥을 촘촘히 박은 목책 시설이 나왔다. 1천 개가 넘는 기둥이 뻘에 박힌 채 보존돼 있었다. 배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 방어 시설이다.

당에는 적산법화원이라는 절을 세웠다. 일본 승려 엔닌이 당에 유학하며 이 절에 머물렀고, 귀국할 때 장보고 휘하 사람들의 배를 탔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그 사정이 자세하다. 장보고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이 외국 승려의 일기라는 점이 이 인물과 이 진의 성격을 보여준다.

바다에서 얻은 힘이 정치적 힘이 됐다. 836년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도망쳐 왔다. 장보고가 군사 5천을 내주어 그를 신무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장보고는 그 값으로 자기 딸을 다음 왕의 왕비로 들이라 요구했다. 경주 귀족들이 반대했다. 해도인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846년 조정이 보낸 염장이 거짓 투항한 뒤 그를 죽였다. 851년 청해진이 헐리고 주민이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됐다.

【남은 것】

동아시아 바다를 30년 가까이 쥔 세력이 국가의 손으로 지워졌다. 이후 이 바다의 주도권은 송의 상인에게 넘어갔다.

골품제가 이 인물을 끝까지 밖에 두었다. 능력으로 올라온 사람을 태생으로 막은 것인데, 같은 제도가 최치원도 산으로 보냈다. 신라는 그로부터 100년이 못 되어 무너진다.

완도 장도는 1984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목책의 나무 기둥은 연대 측정 결과 9세기 것으로 확인됐다. 기록에만 있던 청해진이 실물로 확인된 것이다.

지금 해군 잠수함에 장보고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 시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지도에서 보기: 8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앙코르 노브고로드 마드리드 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