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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신법을 비판하다 여러 번 유배됐다. 시·산문·글씨·그림에 모두 능했고, 황주 유배 시절의 「적벽부」가 대표작이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1105 · 삼별초의 마지막 근거지
삼별초의 마지막 근거지. 이후 몽골 목마장이 들어섰다
한반도 남쪽 화산섬이다. 탐라국이라는 독자적 정치체로 오래 존재하다 고려에 편입됐다.
1270년 고려 조정이 몽골과 강화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발한 삼별초는 진도(용장성)를 거쳐 1271년 이 섬으로 옮겨 와 마지막까지 항전했다(항파두리성).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되며 삼별초의 저항은 끝났다.
이후 몽골(원)은 이 섬의 초지에 주목해 목마장을 설치했다 — 제주가 오랫동안 「말의 섬」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다. 원 간섭기 동안 제주는 한동안 원이 직접 관할하는 특수한 지위에 놓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근현대에는 1948~1954년 제주 4·3 사건이라는 큰 비극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