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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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1138 · 남송의 도읍, 지금의 항저우
남송의 도읍. 지금의 항저우
첸탕강 하구, 대운하의 남쪽 끝에 자리한 도시다. 오대십국 시기 오월국의 도읍이었고, 이 시기부터 이미 상업 도시로 번성하고 있었다.
1127년 정강의 변으로 화북을 금나라에 빼앗긴 송나라 황족이 남쪽으로 내려와 이 도시를 「임시 도읍(임안)」으로 삼았다 — 명목상 「임시」였지만 실제로는 남송이 멸망할 때까지 150년 가까이 수도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인구 백만이 넘는 세계 최대급 도시로 성장했으며,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시기 이곳을 방문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도시」라고 기록했다고 전한다(다만 마르코 폴로의 중국 방문 자체의 진위를 두고는 학계에 이견이 있다).
1276년 몽골(원)에 함락되며 남송이 사실상 멸망했다. 이후로도 도시는 「항저우」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중국 강남을 대표하는 도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