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서주의 정벌과 견융의 침입BC 1042 – BC 771
주 vs 동이·회이·견융

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동이 정벌호경 함락 BC 771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271년 · 봉건 질서의 이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800
폴리스의 형성
성벽이 아니라 광장이 도시를 만들었다.
암흑기를 지나며 그리스 각지에 폴리스가 자리 잡았다. 아고라에서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인구가 넘치자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웠다 — 마르세유·나폴리·이스탄불이 그렇게 생겼다.
BC 800
페니키아의 바다
알파벳을 배에 싣고 지중해를 돌았다.
레바논 해안의 도시들이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두었다.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퍼뜨린 22자 알파벳이 그리스로, 로마로, 그리고 지금 세계 대부분의 문자로 이어진다.
BC 800
고조선의 8조법
고조선에는 살인·상해·절도를 다스리는 8개 조항의 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는 그중 3개 조항만 전해진다.
중국 역사서 「한서」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죄를 면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했다. 이 세 조항만으로도 고조선 사회가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신분 제도(노비)가 이미 존재했으며, 화폐를 대신하는 물품 배상 관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BC 814
카르타고 건설
페니키아 공주가 소가죽만 한 땅을 샀다.
티레의 디도가 망명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 소가죽 한 장 넓이만 달라 해놓고 가죽을 실처럼 잘라 언덕을 둘렀다는. 실제로는 티레의 교역 거점이었고, 600년 뒤 로마와 지중해를 두고 세 번 싸운다.
BC 776
제1회 올림피아 제전
그리스인이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같은 연대를 공유했다. 이후 4년마다 열려 1,100년을 이어간다.
BC 753
로마 건국 전승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교역로

해당 없음

델포이

지명 · BC 800 · 신탁이 금지되며 문을 닫다

신탁을 받던 곳

그리스 파르나소스산 기슭, 지각이 불안정해 땅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는 지형에 자리했다. BC 800년 무렵부터 아폴론 신전과 그 신탁소로 그리스 전역에서 이름났다.

「피티아」라 불린 여사제가 가스에 취한 상태에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면 사제들이 이를 해석해 신탁으로 전했다고 한다 — 실제로 신전 아래에서 에틸렌 등의 가스가 새어 나왔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지질 조사 결과가 20세기 말에 나오면서, 오랫동안 전설로만 여겨지던 이야기에 힘이 실렸다.

그리스 각 도시국가는 물론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 같은 외국 군주까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이곳에 신탁을 물었다. 「신탁은 대개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게 모호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로 애매한 신탁을 잘못 해석해 낭패를 본 사례(크로이소스가 「강을 건너면 큰 나라가 무너진다」는 신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가 자신의 나라가 무너진 일 등)가 여럿 전한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뒤,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 신전을 폐쇄하는 칙령을 내리면서 델포이의 신탁도 공식적으로 끝난 것으로 본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메로에 카르타고 올림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