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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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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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서주의 정벌과 견융의 침입BC 1042 – BC 771
주 vs 동이·회이·견융

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동이 정벌호경 함락 BC 771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271년 · 봉건 질서의 이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호메로스예술BC 750 · 서양 문학이 시작된 이름
BC 8세기

실존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눈이 멀었다는 전승만 있고, 여러 음유시인의 노래가 한 이름으로 묶였을 수 있다.

  • 「일리아스」 — 분노로 시작하는 서사시
  • 「오디세이아」 — 귀향이라는 원형
  • 그리스인의 공통 교양이 됨

그 무렵의 사건

BC 776
제1회 올림피아 제전
그리스인이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같은 연대를 공유했다. 이후 4년마다 열려 1,100년을 이어간다.
BC 753
로마 건국 전승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BC 800
폴리스의 형성
성벽이 아니라 광장이 도시를 만들었다.
암흑기를 지나며 그리스 각지에 폴리스가 자리 잡았다. 아고라에서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인구가 넘치자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웠다 — 마르세유·나폴리·이스탄불이 그렇게 생겼다.
BC 800
페니키아의 바다
알파벳을 배에 싣고 지중해를 돌았다.
레바논 해안의 도시들이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두었다.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퍼뜨린 22자 알파벳이 그리스로, 로마로, 그리고 지금 세계 대부분의 문자로 이어진다.
BC 800
고조선의 8조법
고조선에는 살인·상해·절도를 다스리는 8개 조항의 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는 그중 3개 조항만 전해진다.
중국 역사서 「한서」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죄를 면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했다. 이 세 조항만으로도 고조선 사회가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신분 제도(노비)가 이미 존재했으며, 화폐를 대신하는 물품 배상 관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BC 814
카르타고 건설
페니키아 공주가 소가죽만 한 땅을 샀다.
티레의 디도가 망명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 소가죽 한 장 넓이만 달라 해놓고 가죽을 실처럼 잘라 언덕을 둘렀다는. 실제로는 티레의 교역 거점이었고, 600년 뒤 로마와 지중해를 두고 세 번 싸운다.

교역로

해당 없음

올림피아

지명 · BC 776 · 제전이 폐지되며 저문 성역

제전이 열린 곳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알페이오스강 유역의 제우스 성역이었다. 도시라기보다는 신전과 경기장이 모인 종교·체육 시설 단지에 가깝다.

BC 776년(전통적으로 전하는 연대)부터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다고 한다 — 이 연대 자체는 훗날 편년을 위해 소급 계산된 것이라 정확도에는 한계가 있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가 공유한 오래된 정기 행사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전 기간에는 그리스 도시국가 간 전쟁도 잠시 멈추는 「올림픽 휴전」 관습이 있었다.

달리기·레슬링·전차 경주 등을 겨뤘고, 승자는 상금 대신 올리브 나뭇가지 관을 받았다 — 다만 고향 도시로 돌아가면 명예와 함께 실질적인 보상(면세·연금 등)을 받는 경우가 많아,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이라는 후대의 낭만화된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교 의식으로 간주돼 393년 무렵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으로 폐지된 것으로 전통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마지막 대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사료가 엇갈려 확정되지 않았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부활하기까지 약 1500년의 공백이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로마 델포이 메로에 카르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