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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지명 · 565 · 함락되며 김춘추의 딸이 죽은 성
642년 함락되며 김춘추의 딸이 죽은 성
지금의 경남 합천 일대에 자리한 신라의 서부 방어 거점이다. 백제와 국경을 맞댄 요충지로, 신라가 낙동강 서쪽을 지키는 핵심 성이었다.
642년 백제 의자왕이 즉위 직후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 장군 윤충이 이 성을 함락했다. 당시 성주였던 김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김춘추의 딸)가 이때 죽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딸의 죽음에 김춘추가 크게 상심했고, 이 일이 그가 고구려와 당에 잇달아 사신으로 가 군사 동맹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는 서술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 개인적 비극이 나당동맹이라는 국제 정세의 전환으로 이어진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후 신라는 김유신 등을 앞세워 대야성을 되찾았고, 이는 삼국통일 전쟁의 중요한 국면 중 하나로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