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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도시와 문자가 나타났다. 관개 농업이 잉여를 만들고 신전과 왕궁이 그것을 관리했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의 시대. 아직 국가라 부를 정치체가 없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지명 · BC 3000 · 신아시리아의 도읍. BC 612년 함락
【그때 그 자리】
티그리스강 상류의 도시다. 지금 이라크 모술 건너편이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2천 년기부터 있었지만, 기원전 9세기부터 급격히 커졌다. 철제 무기와 기병과 공성 기술을 앞세워 서아시아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 제국의 통치 방식은 공포였다. 저항한 도시의 지도자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성벽에 걸고, 주민을 통째로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이 강제 이주를 기록에 자랑스럽게 남겼다. 부조에 포로를 다루는 장면을 새겨 넣었다.
두려움을 미리 퍼뜨리면 싸우지 않고 항복한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705년 센나케립이 수도를 니네베로 옮겼다.
그는 도시를 크게 지었다. 성벽 12킬로미터, 문이 열다섯 개였다. 인구가 10만을 넘어 당시 세계 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을 끌어오려 50킬로미터 넘는 수로를 놓고 제르완에 돌다리 수도교를 세웠다. 로마보다 훨씬 앞선 구조물이다. 그가 만든 정원이 뒷날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잘못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떻게 흘렀나】
이 도시가 남긴 가장 큰 것은 도서관이다.
기원전 7세기 아슈르바니팔이 점토판 3만 점 이상을 모았다. 그는 스스로 쐐기문자를 읽을 수 있는 왕이라 자랑했다. 각지에서 문헌을 수집하거나 베끼게 했다.
여기 모인 것이 문학과 의학과 천문과 점술과 사전과 행정 문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가장 완전한 판본이 이 도서관에서 나왔다.
기원전 612년 바빌론과 메디아 연합군이 니네베를 함락하고 불태웠다. 도서관도 불탔다.
그런데 점토판은 불에 타면 오히려 단단해진다. 무너진 궁전 아래 깔린 채 2,500년을 견뎠다. 1850년대 영국 발굴대가 찾아냈다.
【그래서】
아시리아 제국은 니네베 함락 몇 해 뒤 완전히 사라졌다. 200년 넘게 서아시아를 지배한 제국이 급격히 무너진 이유로는 잦은 원정에 따른 소모, 강제 이주로 쌓인 원한, 그리고 왕위 다툼이 함께 꼽힌다.
구약성서 나훔서가 이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고 기뻐하는 내용이다. 요나서에서는 요나가 이 도시에 회개를 전하러 가기 싫어 도망친다. 아시리아가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킨 나라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
공포로 다스린 제국이 남긴 것이 도서관이었다는 점이 이 도시의 아이러니다. 아슈르바니팔이 모으지 않았다면 길가메시 서사시도 사라졌을 것이다.
궁전 벽의 부조가 대영박물관에 있다. 사자 사냥 장면의 조각은 고대 미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살을 맞고 뒷다리가 마비된 채 앞발로 기어가는 암사자를 새긴 부분이 특히 유명하다.
2015년 이슬람국가가 모술 박물관의 아시리아 유물을 부수고 니네베 유적을 폭파했다. 남은 것의 상당 부분이 그때 사라졌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트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