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왜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1171 · 카이로를 세운 시아파 칼리파국
십자군과 누르 앗 딘 사이에서 흔들리다 시리아에 구원을 청했다. 파견된 살라흐 앗 딘이 재상이 되었고, 마지막 칼리파가 죽자 시아파 왕조를 조용히 끝내고 수니파 아바스의 이름으로 금요 예배를 올렸다. 200년 시아파 칼리파국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때 그 자리】 909년 북아프리카에서 섰다.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다.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후손이라 주장해 그 이름이 붙었다.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카이로를 세웠다.
「알카히라 — 승리의 도시」다.
【왜 그렇게 됐나】 당시 이슬람 세계에 칼리파가 셋 있었다.
바그다드의 아바스,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 그리고 카이로의 파티마다.
파티마는 시아파였다. 나머지는 수니파다.
그런데 이집트 주민 대다수가 수니파와 콥트 기독교인이었다.
강요하지 않았다. 관용으로 다스렸다.
콥트 기독교인을 관리로 썼다. 유대인도 고위직에 올랐다.
재상 야쿱 이븐 킬리스는 유대인 출신 개종자다.
이 관용이 왕조를 유지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흘렀나】 알아즈하르를 세웠다.
970년에 모스크로 지었고 곧 학교가 됐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대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에 든다.
역설적인 것이 있다. 시아파가 세운 그 학교가 지금 수니파 학문의 중심이다.
「지혜의 집(다르 알히크마)」도 세웠다. 도서관에 장서가 수십만 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홍해 무역을 쥐었다. 인도양에서 오는 향신료가 이집트를 지나 지중해로 갔다.
이탈리아 도시들과 거래했다. 베네치아와 아말피의 상인들이 카이로에 왔다.
「카이로 게니자」라는 문서 더미가 남아 있다. 회당의 창고에 버리지 않고 쌓아 둔 문서 30만 점이다.
상인의 편지, 계약서, 이혼 서류, 아이의 습자까지 있다.
11~13세기 지중해 상업사를 재구성하는 핵심 자료가 됐다.
【그래서】 11세기부터 흔들렸다.
알하킴이라는 칼리파가 기이한 정책을 폈다. 성묘 교회를 파괴했다 — 그것이 십자군의 명분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가 실종됐다. 그를 신격화한 무리가 나왔는데 그것이 드루즈파의 시작이다.
1060년대에 대기근이 7년 이어졌다.
나일강 범람이 실패했다.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군대가 인종별로 갈려 서로 싸웠다. 튀르크계·베르베르계·수단계다.
재상이 실권을 쥐고 칼리파는 상징이 됐다.
【남은 것】 1171년 살라흐 앗딘이 끝냈다.
그가 파티마의 재상이었다. 마지막 칼리파가 죽자 아바스 칼리파의 이름으로 금요 예배를 올리게 했다.
그것으로 왕조가 끝났다. 저항이 거의 없었다.
장서 수십만 권이 흩어졌다. 시아파 서적이 대량으로 없어졌다.
이집트가 수니파로 돌아갔다.
이스마일파는 살아남았다. 지금 니자리 이스마일파의 지도자가 아가 칸이다.
카이로는 남았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