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주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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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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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봉건 유럽과 십자군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한반도

무신정권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전쟁 2건

무신정권의 성립1170 – 1270
고려 무신 vs 문신

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보현원의 변 1170김보당의 난 1173삼별초 항쟁 1270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100년 · 무인의 시대
타라인 전투1192
고르 왕조 vs 라지푸트 연합

전해에는 프리트비라지가 이겼다. 이듬해 무함마드 고리가 다시 왔다.

1차 타라인 11912차 타라인 1192

결과이 한 번으로 북인도가 열렸다. 델리 술탄국이 서고 이후 600년간 이슬람 왕조가 북인도를 다스린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7명

리처드 1세장군1191 · 살라딘과 겨룬 「사자심왕」
1157 – 1199, 재위 1189 – 1199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 제3차 십자군, 아르수프 승리(1191)
  • 살라딘과 휴전, 성지 순례 보장
  • 오스트리아에 억류, 몸값 15만 마르크
주희사상1190 · 성리학을 집대성해 동아시아 700년의 정통을 만든 학자
1130 – 1200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 「사서집주」
  • 이기론·격물치지
  • 백록동 서원 재건, 「주자가례」
살라흐 앗딘장군1187 · 아이유브 술탄
1137 – 1193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
  • 하틴에서 십자군 격파
  • 예루살렘 탈환 1187
피보나치과학1202 · 수학자
1170 무렵 – 1250 무렵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 계산의 책 저술 1202
  • 피보나치 수열
  • 인도-아라비아 숫자 체계 전파
칭기즈 칸장군1206 · 몽골 대칸
1162 – 1227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 초원 부족을 통일 1206
  • 호라즘 정벌로 서방 진출
  • 역참제와 몽골 문자
자야바르만 7세정치1181 · 얼굴 216개를 새긴 왕
1122 무렵 – 1218 무렵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 앙코르 톰과 바이욘
  • 탑마다 새긴 얼굴 216개
  • 병원 102곳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정치1180 · 이탈리아와 교황에 맞선 「붉은 수염」 황제
1122 무렵 – 1190, 재위 1155 – 1190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 이탈리아 원정 6회, 레냐노 패배(1176)
  • 사자공 하인리히 제압
  • 제3차 십자군 중 살레프강에서 익사

그 무렵의 사건

1200
라파누이의 석상
섬 하나에 900개를 세우고 나무를 다 썼다.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에 닿아 거대한 석상 900개를 세웠다. 옮기는 데 나무가 필요했고, 숲이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 없어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스스로 자원을 다 쓴 사례로 오래 인용됐는데, 쥐와 유럽인이 옮긴 병의 몫이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1206
칭기즈 칸 즉위
흩어진 초원 부족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였다.
흩어진 초원이 하나가 됐다. 73년에 걸친 정복이 여기서 시작된다.
1180
베냉 왕국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베냉 왕국은 정교한 청동 조각과 궁정 예술로 이름 높았으나, 1897년 영국의 무력 원정으로 왕궁이 약탈당하고 멸망했다.
12세기 무렵 세워진 이 왕국은 오바(왕)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된 궁정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왕실 조상과 역대 오바를 기리는 정교한 청동·상아 조각('베냉 브론즈')으로 유명했다. 1897년 영국은 무역 분쟁을 구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청동 조각을 약탈해 유럽 박물관으로 실어갔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이지리아 반환 요구와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1215
마그나 카르타
귀족들이 왕에게 법의 제약을 문서로 받아냈다.
왕도 법 아래 있다는 원칙이 문서로 남았다. 입헌주의의 씨앗이 된다.
1215
마그나카르타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해 왕권을 제한하는 대헌장에 서명했다.
왕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문서로 못박은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에는 귀족의 특권을 지키려는 문서에 가까웠지만, 후대에 재해석되며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이 됐다.
1234
금속활자
고려가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찍었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다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인쇄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셀주크 제국

나라의 멸망 · 1194 · 술탄이라는 자리를 만든 나라

말리크샤 사후 후계 다툼으로 대제국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마지막 대술탄 토그릴 3세가 화라즘군에 패해 전사하며 이란의 셀주크는 끝났고, 아나톨리아의 룸 셀주크만 남아 오스만의 앞길을 닦았다.

【그때 그 자리】 11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크계 오구즈족의 한 갈래가 남하했다.

지도자 셀주크의 이름을 땄다.

1055년 토그릴 베그가 바그다드에 들어갔다.

【왜 그렇게 됐나】 아바스 칼리파가 이름만 남아 있었다.

실권은 시아파인 부이 왕조가 쥐고 있었다.

셀주크는 수니파였다.

칼리파가 그들을 불렀다. 시아파를 몰아내 달라는 것이다.

토그릴이 그렇게 했다. 그리고 칼리파에게서 「술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여기서 구조가 생겼다.

칼리파는 종교적 권위를 갖고, 술탄이 실제 권력을 쥔다.

이 이원 구조가 그 뒤 이슬람 세계의 기본형이 된다.

【어떻게 흘렀나】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티움군을 깼다.

황제 로마노스 4세가 사로잡혔다.

알프 아르슬란이 그를 정중히 대하고 풀어 주었다.

그런데 돌아간 황제는 폐위되고 눈이 뽑혔다.

비잔티움이 아나톨리아를 잃었다. 그곳이 그 뒤 튀르크의 땅이 된다.

「터키」라는 이름의 시작이다.

그 상실이 십자군을 불렀다. 비잔티움 황제가 서방에 용병을 요청했다.

재상 니잠 알물크가 나라를 다스렸다.

「니자미야」라는 학교를 여러 도시에 세웠다. 관리와 법학자를 길렀다.

국가가 세운 고등교육 기관의 이른 사례다.

가잘리가 바그다드 니자미야에서 가르쳤다.

「시야사트나마(정치서)」를 썼다. 통치의 원칙을 왕에게 가르치는 책이다.

「이크타」 제도를 정비했다. 토지의 세금 징수권을 군인에게 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 이크타가 문제가 됐다.

처음에는 임시였는데 세습되기 시작했다.

지방 사령관이 자기 땅을 갖게 됐다.

그리고 왕위 계승에 원칙이 없었다.

유목 전통에서는 일족이 함께 나눠 갖는다. 아들마다 지역을 받았다.

그래서 대마다 갈렸다.

1092년 니잠 알물크가 암살됐다. 아사신파의 소행으로 전한다.

같은 해 술탄 말리크샤도 죽었다.

그 뒤 형제와 조카들이 서로 싸웠다.

룸 셀주크, 케르만 셀주크, 시리아 셀주크로 갈렸다.

【남은 것】 1194년 마지막 대셀주크 술탄이 화라즘에게 죽었다.

아나톨리아의 룸 셀주크가 100년쯤 더 갔다.

그것도 1243년 몽골에게 굴복했다.

그 조각들 가운데 하나에서 오스만이 나온다.

남긴 것이 크다.

튀르크계가 아나톨리아에 정착했다. 그 인구 이동이 지금의 튀르키예를 만들었다.

「술탄」이라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였다. 궁정에서 페르시아어를 썼다.

튀르크의 군사력과 페르시아의 행정과 아랍의 종교가 결합한 형태 — 그것이 그 뒤 이슬람 제국들의 틀이 된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파티마 왕조 화라즘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