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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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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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사산조의 멸망642 – 651
라시둔 칼리파국 vs 사산조 페르시아

동로마와의 소모전과 왕위 다툼으로 사산조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무슬림 군대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카디시야 636니하완드 642

결과400년 이어진 페르시아 제국이 사라지고 이란이 이슬람권으로 편입됐다.

10년 · 400년 왕조가 소멸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0명

김춘추정치654 · 신라 29대 무열왕
603 – 661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 648년 나당 동맹을 맺음
  • 진골 출신 첫 왕
  • 660년 백제 멸망을 봄
현장사상645 ·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서유기」의 삼장법사
602 – 664

국법을 어기고 서역으로 나가 17년 만에 경전 657부를 싣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기는 인도 역사의 1급 사료다.

  • 인도 나란다에서 유학(631–643)
  • 「대당서역기」 저술
  • 「반야심경」「유식」 경론 번역
김유신장군660 · 신라 장군
595 – 673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군을 이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 황산벌에서 계백을 꺾음
  • 백제·고구려 정벌을 이끔
  • 나당전쟁에 대비한 군제 정비
계백장군660 · 백제의 마지막 장수
? – 660

황산벌에서 5천으로 신라 5만을 맞았다. 네 번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다. 떠나기 전 자기 가족을 죽였다고 전한다.

  • 황산벌 전투
  • 네 차례 격퇴 뒤 전사
  • 백제 멸망과 함께 죽었다
우마르정치640 · 이슬람 제국의 틀을 만든 2대 칼리파
584 무렵 – 644, 재위 634 – 644

10년 만에 시리아·이집트·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정복지의 세금·군대·달력 제도를 세워 아랍 부족 연합을 제국으로 바꿨다.

  • 야르무크·카디시야 승리로 비잔티움·사산 격파
  • 예루살렘 무혈 입성(637)
  • 히지라력 제정, 디완(급여 대장) 설치
원효사상668 · 신라의 승려
617 – 686

당으로 가던 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돌아섰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이후 시장과 마을을 돌며 글 모르는 사람에게 불교를 전했다.

  • 대승기신론소 — 중국에서도 읽혔다
  • 화쟁 — 갈라진 학설을 아우름
  • 파계하고 설총을 낳았다
선덕여왕정치632 · 한국사 최초의 여왕
재위 632 – 647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 한국사 최초의 여성 군주로 즉위
  • 첨성대·황룡사 9층 목탑 건립
  • 백제·고구려의 잦은 침공 속 김유신 등 인재 등용
당 태종정치630 · 정관의 치를 이룬 당의 2대 황제
598 – 649, 재위 626 – 649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 즉위했지만, 신하의 간언을 듣고 돌궐을 꺾어 「천가한」으로 불린 황제가 됐다.

  • 현무문의 변(626)으로 즉위
  • 동돌궐 격파, 천가한 칭호(630)
  • 정관의 치 — 위징의 간언 수용
문무왕정치676 · 신라 30대 왕
626 – 681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어긴 당을 다시 몰아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묻혔다.

  • 668년 고구려 멸망
  • 675년 매소성·676년 기벌포에서 당을 격퇴
  • 대왕암 — 바다에 묻힌 왕
의상사상676 · 신라 화엄종을 연 승려
625 – 702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 사상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에 화엄종을 열었다.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세우며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 당 유학 후 화엄종 개창
  • 부석사 등 화엄십찰 건립
  • 「화엄일승법계도」 저술

그 무렵의 사건

661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
661년, 무아위야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세습 칼리파국을 열었다. 이슬람 최초의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고 왕조 체제로 바뀌었다.
4대 칼리파 알리가 암살된 뒤,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를 합의로 뽑던 관행이 세습으로 바뀐 이 전환은 훗날 순니-시아 분열의 먼 배경이 됐다.
671
스리위자야
말라카 해협을 쥔 바다의 나라.
수마트라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을 600년간 쥐었다. 당의 승려 의정이 이곳에 머물며 산스크리트를 배웠다. 성을 남기지 않아 오래 잊혔다가 20세기에 비문으로 확인됐다.
628
영이 숫자가 되다
빈자리가 아니라 계산할 수 있는 수가 됐다.
브라마굽타가 영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뤘다. 음수도 함께 정리했다 — 빚을 재산에서 빼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가 됐다.
676
신라의 삼국통일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622
헤지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가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됐다.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된 순간.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682
신문왕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직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학을 세워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이자 유력 진골 귀족이던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에 연루된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귀족에게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해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냈다. 지방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해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기반도 마련했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사산 제국

나라의 멸망 · 651 · 황제가 도망 끝에 물방앗간에서 살해됐다

비잔티움과 26년을 싸워 양쪽 다 탈진한 직후 아랍군이 왔다. 카디시야와 니하반드에서 잇따라 깨졌고, 야즈데게르드 3세는 동쪽으로 도주하다 메르브의 방앗간 주인에게 살해됐다. 조로아스터교 국가 400년이 끝났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뒤, 이란 고원은 셀레우코스와 파르티아가 차례로 다스렸다.

파르티아는 유목 기원의 나라로 봉건적이었다. 지방 귀족의 힘이 강해 왕권이 약했다. 로마와 오래 싸웠다.

224년 파르스 지방의 아르다시르가 파르티아 왕을 꺾고 새 왕조를 세웠다. 사산 가문의 후손이라 사산조라 한다.

파르스는 아케메네스가 일어난 곳이다. 그들은 자기가 옛 페르시아 제국을 잇는다고 선언했다.

【왜 그렇게 됐나】

이 왕조는 앞선 파르티아와 두 가지가 달랐다.

하나는 중앙집권이다. 지방 귀족을 누르고 관료제를 세웠다.

다른 하나가 종교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신관 계급이 국가 조직에 들어왔다. 경전 아베스타가 이 시기에 정리됐다.

조로아스터교는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한 세력이 대립하고 마지막에 선이 이긴다고 본다. 최후의 심판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의 관념이 여기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에 영향을 줬다는 연구가 오래됐다.

【어떻게 흘렀나】

로마와 400년을 싸웠다.

260년 샤푸르 1세가 에데사에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았다. 로마 황제가 적에게 산 채로 붙잡힌 유일한 경우다. 낙쉐 로스탐의 바위에 그 장면이 새겨져 있다. 말 탄 샤푸르 앞에 로마 황제가 무릎 꿇은 부조다.

6세기 호스로 1세 때 절정이었다. 세제를 개혁하고 상비군을 정비했으며 관개시설을 넓혔다.

그는 학문을 후원했다. 529년 유스티니아누스가 아테네의 철학 학교를 닫자 갈 곳을 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의 궁정으로 왔다. 준디샤푸르에 의학 학교가 섰다. 그리스와 인도와 페르시아의 의학이 여기서 만났다.

인도에서 온 이야기가 페르시아어로 옮겨지고 다시 아랍어로 옮겨졌다. 칼릴라와 딤나가 그렇다. 체스도 인도에서 이곳을 거쳐 서쪽으로 갔다.

602년부터 628년까지 비잔티움과 마지막 큰 전쟁을 벌였다. 예루살렘과 이집트까지 차지했다가 헤라클리우스의 반격으로 다 잃었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남은 것이 없었다. 재정이 바닥나고 병력이 소모됐다.

【그래서】

642년 니하완드에서 아랍군에 패했다. 651년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되며 끝났다. 427년이었다.

두 제국이 서로를 갉아먹은 자리에 제3의 세력이 들어온 전형적인 사례다.

【남은 것】

이란은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아랍화되지는 않았다. 언어를 지켰다. 지금도 페르시아어를 쓴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아랍어권이 된 것과 대비된다.

그리고 사산의 행정 방식과 궁정 문화가 아바스 왕조로 넘어갔다. 바그다드가 페르시아 문화권 한가운데 세워졌고, 재상 제도와 관료제가 사산의 것을 이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 일부가 인도로 피해 파르시가 됐다. 지금도 뭄바이에 공동체가 있다. 타타 그룹이 그 후손이다.

이란에서 이 왕조는 이슬람 이전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으로 기억된다. 그 기억이 지금 이란의 자의식에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백제 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