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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산업화한 열강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나눠 가졌다. 동맹 체제가 굳어지며 국지 분쟁이 전면전으로 번질 구조가 만들어졌다.
국권을 잃고 35년. 3·1운동과 임시정부, 만주의 무장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왜35년 독재 아래 땅이 소수에게 몰렸다.
결과열 해 동안 100만 명 넘게 죽었다. 사파타도 비야도 끝을 보지 못했지만 1917년 헌법에 토지개혁과 노동권이 들어갔다. 20세기 첫 사회혁명으로 꼽힌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재판에서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남부 농민들을 이끌고 빼앗긴 공유지를 되찾으려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속은 미뤄졌고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매복에 걸려 죽었다.
원자핵을 발견하다
역사는 나와 남의 싸움이라고 썼다. 을지문덕전을 써서,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일 자체가 힘이 된다고 봤다.
대륙이 움직인다고 말한 사람
삼민주의를 내걸고 열 번 봉기해 열 번 실패했지만 신해혁명으로 2천 년 제정을 끝냈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그를 국부로 받든다.
당장 싸우는 것보다 사람을 기르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미국에서 동포를 조직하고 학교를 세웠다.
전자가 정해진 궤도만 돈다는 원자모형으로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다.
모델 T를 조립라인에서 93분에 한 대씩 만들어 값을 세 배 낮췄다. 노동자에게 하루 5달러를 주어 자기 차를 사게 했다.
넉 달 사이 논문 네 편으로 물리학을 바꿨다. 1919년 일식 관측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다.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 모래언덕에서 12초, 36m. 자전거 가게를 하던 두 형제가 하늘을 열었다.
열일곱에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이끌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졌다.
3·1운동 뒤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광복군을 조직했다.
민족자결을 말해 3·1운동에 불을 붙였다. 국제연맹을 만들었으나 정작 미국 상원이 가입을 거부했다.
흑체복사 문제를 풀려고 에너지가 최소 단위로만 오간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양자역학이 시작됐다.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독립군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이후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이어가다 암살당했다.
포수 출신으로 대한독립군을 조직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훗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꿈은 억압된 소원의 실현이고 사람은 스스로 모르는 힘에 이끌린다. 그의 이론은 심리학과 문학, 일상의 말까지 바꿨다.
헛간 실험실에서 광석을 정제해 새 원소를 분리했다.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잡은 첫 파시스트 독재자. 히틀러의 본보기이자 나중엔 그의 꼭두각시가 됐고, 파르티잔에게 처형돼 거꾸로 매달렸다.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으로 명성을 얻은 뒤, 튀르크 독립전쟁을 이끌어 그리스와 연합국의 분할 시도를 막아냈다. 1923년 술탄정을 폐지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워 초대 대통령이 됐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에서 통치했다.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 퇴위당했다.
이탈리아의 침공을 아드와에서 격퇴했다. 아프리카가 유럽 군대를 정면에서 이긴 드문 예이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만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 자주독립과 근대 개혁을 이끄는 여론을 일으켰다.
친러 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조선 침탈에 방해가 된다고 본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그를 시해했다(을미사변).
아버지가 고부군수의 수탈에 항의하다 맞아 죽었다.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 불렸다. 우금치에서 기관총 앞에 무너졌다.
3·1 운동 33인 가운데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몇 사람 중 하나다. 님의 침묵에서 님은 잃은 나라이기도 하고 부처이기도 하다.
전자를 파동으로 다루는 방정식을 세우고, 양자역학의 역설을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짚었다.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원리를 내놨다.
우연히 자란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은하가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측으로 밝혀 팽창 우주를 증명했다.
소금 행진으로 비폭력 불복종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노예제를 없애고 관료제와 학교와 철도를 들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땅 일부를 내주며 균형을 잡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군 출신으로 쿠데타에 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뒤, 개인숭배와 비밀경찰을 앞세운 폭압적 통치를 이어갔다. 아이티계 주민 수천~수만 명을 학살한 1937년 '파슬리 학살'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드비어스로 다이아몬드를 독점하고 케이프 식민지 총리가 됐으며 자기 이름을 딴 로디지아를 만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별도 병합하겠다」고 했다.
스물넷에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 한 번으로 장제스가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했다.
1902년 리야드를 탈환한 것을 시작으로 30년에 걸쳐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부족과 도시국가를 정복·통합했다.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초대 국왕이 됐다.
에디슨의 직류에 맞서 교류 모터와 송전을 만들어 오늘의 전력망을 결정했다. 무선 전력의 꿈을 좇다 가난하게 죽었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초로 광견병 백신을 사람에게 썼다.
조슈의 하급 무사에서 4번 총리가 됐다. 대일본제국 헌법을 기초했고, 을사늑약을 강요한 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위에서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일본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끝났고 10년 뒤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무솔리니의 침공에 맞서 제네바에서 「오늘은 우리, 내일은 당신들」이라 경고했다. 44년을 다스렸고 라스타파리는 그를 신으로 섬긴다.
불황엔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 그의 「일반이론」은 전후 30년 서방 경제정책의 교과서였고 브레턴우즈 체제를 설계했다.
해당 없음
나라의 멸망 · 1910 · 조약문에 황제의 도장이 끝내 찍히지 않았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정미조약으로 군대를 잃은 뒤였다. 순종은 병합조약에 서명하지 않았고 국새도 찍히지 않았다 — 이 절차적 흠결이 훗날 조약 무효론의 근거가 된다. 조선 개국부터 518년.
【그때 그 자리】
1895년 10월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들어와 명성황후를 죽였다. 왕비가 자기 궁에서 외국인에게 살해된 것이다. 고종은 신변을 두려워해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아관파천이다. 왕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1년을 지냈다.
밖에서는 청일전쟁으로 청이 물러나고 일본과 러시아가 맞섰다. 안에서는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열어 여론이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다.
【왜 그렇게 됐나】
1897년 2월 고종이 경운궁으로 돌아왔다.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하고 황제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라 했다.
황제를 칭한 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조선은 500년간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는 왕의 나라였다. 황제를 칭한다는 것은 그 관계를 끊고 어느 나라와도 대등하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청일전쟁으로 청이 물러난 그때가 유일한 기회였다.
【어떻게 흘렀나】
광무개혁이 시작됐다.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는 구본신참이 원칙이었다.
양전 사업으로 토지를 다시 측량하고 지계를 발급해 소유권을 문서로 확정했다. 전화가 놓이고 전차가 다녔다. 1899년 서울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전차가 개통했는데, 이는 도쿄보다 빨랐다. 광무학교와 상공학교가 섰고, 유학생을 보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를 그 관할로 명시했다. 관보에 실린 국가 문서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했다. 1899년 대한국 국제는 황제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는 내용이었다. 독립협회가 요구한 의회 설립은 거부되고 협회는 해산됐다. 위에서 하는 근대화만 남고 아래를 조직할 힘은 스스로 잘랐다.
돈도 없었다. 개혁 자금 상당수를 외국 차관에 기댔다.
【그래서】
1904년 러일전쟁이 나자 일본이 한일의정서로 국토를 군사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넘어갔다. 1907년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고종이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됐다. 1910년 병합됐다.
13년이었다.
【남은 것】
실패한 근대화로만 볼 것인가는 논쟁이 있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평가와, 시간이 모자랐을 뿐 방향은 맞았다는 평가가 맞선다. 분명한 것은 13년 안에 국제 정세를 뒤집을 힘을 만드는 것이 애초에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름은 남았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제국의 대한을 가져오되 황제 대신 민을 넣었다. 지금 나라 이름이 여기서 왔다.
지도에서 보기: 19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청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일본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