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농민의 아들로 신라 군인이 되었다가 완산주에서 나라를 세웠다. 240년 전에 망한 백제의 이름을 다시 꺼냈다.
애꾸눈의 승려 출신으로 고구려의 원수를 갚겠다며 일어섰다.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며 관심법으로 사람을 죽이다 쫓겨났다.
열두 살에 당으로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다. 황소의 난 토벌 격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돌아온 신라에서는 골품제에 막혔다.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으로 국호를 정했다. 호족을 혼인으로 묶었다.
바이킹에 밀려 습지로 도망쳤다가 다시 모아 이겼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 불린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900 · 비석에 날짜를 새기다 어느 해부터 멈췄다
남부 저지대 도시들이 100년에 걸쳐 차례로 버려졌다. 호수 퇴적물은 심한 연속 가뭄을 가리키고, 비문은 도시 간 전쟁이 격화됐음을 보여준다. 마야인이 사라진 게 아니라 도시를 떠났고, 북부 치첸이차는 이후에도 번성했다.
【그때 그 자리】
중앙아메리카의 열대 저지대다. 지금의 과테말라와 벨리즈와 멕시코 남부다.
이 지역은 문명이 일어나기에 불리해 보인다. 큰 강이 없고,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며, 토양이 얕다. 밀림을 베어 태우고 농사를 짓다 몇 해 뒤 옮기는 화전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3세기부터 9세기까지 도시들이 번성했다.
물을 모아 해결했다. 티칼에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었다. 광장 전체를 회반죽으로 덮어 빗물이 저수지로 흐르게 설계했다. 도시가 하나의 물받이였다.
습지를 개간해 이랑을 만들고, 계단밭을 만들었다. 옥수수와 콩과 호박을 함께 심어 지력을 유지했다.
【왜 그렇게 됐나】
마야는 하나의 제국이 아니었다. 60개가 넘는 도시국가가 각자 왕을 두고 동맹과 전쟁을 반복했다.
티칼과 칼락물이 두 축이었다. 두 도시가 다른 도시들을 끌어들여 오래 다퉜다.
이 구조가 그리스 도시국가와 비교되곤 한다. 통일되지 않았기에 경쟁하며 발전했다는 해석과, 통일되지 않았기에 위기에 함께 무너졌다는 해석이 함께 있다.
【어떻게 흘렀나】
이들이 남긴 것 가운데 문자와 역법이 특별하다.
마야 문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해독된 문자 체계다. 소리와 뜻을 함께 나타내는 800여 개의 기호로 이뤄졌다. 20세기 중반 러시아 학자 크노로소프가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해독되자 내용이 드러났다. 신화가 아니라 왕들의 즉위와 전쟁과 혼인 기록이었다.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역법이 정교했다. 260일 주기와 365일 주기를 맞물려 52년마다 반복되는 달력을 썼고, 별도로 기원전 3114년을 기점으로 날짜를 세는 장기력을 만들었다. 금성의 주기를 584일로 계산했는데 실제와 두 시간 차이다.
영을 독자적으로 발명했다. 인도와 별개로 나온 것이다.
건축도 남았다. 티칼의 신전 피라미드는 높이 70미터로 밀림 위로 솟아 있다. 팔렌케의 파칼 왕 무덤은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됐다.
【그래서】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사이에 남부 저지대의 도시들이 차례로 버려졌다. 새 비문을 세우는 것이 멈추고 왕조가 끊겼다.
원인에 대해 오래 논쟁이 있었다. 지금은 여러 요인이 겹친 것으로 본다.
석순과 호수 퇴적물 분석으로 9세기에 극심한 가뭄이 여러 차례 있었음이 확인됐다. 동시에 인구가 늘어 밀림을 지나치게 개간해 토양이 약해졌다. 도시 간 전쟁이 격화됐다는 비문 증거도 있다.
물에 기대어 세운 문명이 물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남은 것】
마야인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도 600만 명 넘는 마야계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며 30여 개의 마야어를 쓴다. 도시가 버려졌을 뿐이다.
북쪽 유카탄의 치첸이트사 같은 도시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16세기 에스파냐가 왔을 때도 마야 도시들이 있었다.
에스파냐 선교사 디에고 데 란다가 마야 문서를 이단으로 여겨 불태웠다. 남은 것이 네 권뿐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마야 문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그것이 400년 뒤 해독의 실마리가 됐다.
2012년 장기력의 한 주기가 끝나는 날을 두고 종말론이 돌았다. 마야인들에게 그것은 달력이 한 바퀴 도는 날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