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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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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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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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흑사병 이후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자 노동력이 귀해지고 농노제가 흔들렸다. 몽골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오스만과 명이 들어섰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1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9명

세종정치1443 · 조선 4대 왕
1397 – 1450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측우기와 자격루, 농사직설도 이 시대다.

  • 훈민정음 창제 1443
  • 측우기·자격루·칠정산
  • 4군 6진 개척
파차쿠텍정치1438 · 세상을 뒤집는 자
1418 무렵 – 1471 무렵

찬카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은 달아났고 그는 남아 막았다. 그 뒤 90년 만에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4천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 쿠스코를 다시 설계
  • 4만 킬로미터 도로망
  • 마추픽추를 지은 것으로 본다
울루그 베그과학1437 · 천문대를 세운 정복자의 손자
1394 – 1449

티무르의 손자인데 별을 봤다. 반지름 40미터 육분의로 항성 1,018개의 자리를 재고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했다. 오차가 1분 이내다.

  • 사마르칸트 천문대
  • 항성 목록 1,018개
  • 종교 세력의 반발로 아들에게 살해
히아와타정치1450 · 다섯 부족을 묶은 사람
15세기 무렵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을 하나의 연맹으로 묶었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전쟁은 함께 결정한다는 규칙을 조개구슬 띠에 새겨 전했다. 글자 없이 헌법을 남긴 것이다.

  • 이로쿼이 연맹
  • 대법 — 만장일치와 여성 장로의 추장 지명권
  • 프랭클린이 이 연맹을 본보기로 들었다
장영실과학1434 · 관노 출신의 기술자
1390 무렵 – ?

어머니가 관기였다. 세종이 신분을 넘어 썼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와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을 만들었다.

  • 자격루 — 스스로 치는 물시계
  • 측우기 — 세계 최초의 정량 강우 측정
  • 혼천의·앙부일구
  • 임금의 가마가 부서져 파직된 뒤 기록이 끊긴다
메흐메트 2세장군1453 · 오스만 술탄
1432 – 1481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
  • 발칸과 아나톨리아 정복
  • 이스탄불 재건
황희정치1431 · 조선의 재상
1363 – 1452

18년을 영의정으로 있었다.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유배됐다가 세종이 다시 불렀다. 반대했던 사람을 쓴 것이다.

  • 영의정 18년
  • 세종의 치세를 실무로 떠받침
  •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잔 다르크장군1429 · 오를레앙의 처녀
1412 – 1431

열일곱에 군을 이끌고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었다. 2년 뒤 화형당했다.

  • 오를레앙 포위를 풂 1429
  •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성사
  • 루앙에서 화형
영락제정치1421 · 베이징 천도와 정화 원정을 명한 명의 3대 황제
1360 – 1424, 재위 1402 – 1424

조카의 제위를 빼앗고 자금성을 지었다. 정화의 대함대를 인도양으로 보내고 몽골 원정에 다섯 번 나섰다.

  • 정난의 변으로 즉위(1402)
  • 베이징 천도, 자금성 완공(1421)
  • 정화의 남해 원정, 「영락대전」 편찬

그 무렵의 사건

1443
훈민정음
세종이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3년 뒤 반포한다.
글을 아는 사람의 범위가 근본적으로 넓어졌다.
1443
4군 6진 개척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조선의 국경으로 확정했다.
당시 압록강·두만강 유역은 여진족이 자주 넘나들며 노략질을 일삼는 불안정한 접경지였다. 세종은 최윤덕에게 압록강 방면을, 김종서에게 두만강 방면을 맡겨 여진족을 토벌하고 각각 4개의 군(4군)과 6개의 진(6진)을 설치하게 했다. 이 개척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선이 조선의 국경으로 확정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한반도 국경선의 원형이 되었다. 세종은 이와 함께 삼남 지방의 백성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을 펴 새 영토를 안정적으로 지키게 했다.
1436
피렌체 르네상스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완성됐다. 메디치의 돈과 고전의 재발견이 미술과 학문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1436년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거대한 돔이 발판 없이 벽돌을 쌓는 새 공법으로 완성됐다. 같은 도시에서 마사초는 원근법으로 그렸고, 도나텔로는 천 년 만에 나체 청동상을 만들었으며, 브루니는 키케로를 본떠 시민의 삶을 찬미했다. 은행가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플라톤 전집 번역과 도서관에 돈을 댔다.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가 이 도시에서 자란다.
1450
구텐베르크 인쇄술
활판 인쇄가 유럽에서 시작됐다. 지식의 복제 비용이 무너졌다.
지식의 복제 비용이 무너졌다. 60년 뒤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1450
팀북투의 책
어떤 상품보다 책이 큰 이익을 남긴다고 적혀 있다.
사막을 건너온 소금과 남쪽에서 올라온 금이 만나는 자리였다. 상코레에 학생 2만 5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필사본 30만 점이 남아 있고, 2012년 무장 세력이 왔을 때 주민들이 상자에 담아 남쪽으로 빼돌려 지켰다.
1450
이로쿼이 연맹
글자 없이 헌법을 만든 사람들.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이 하나로 묶였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여성 장로가 추장을 지명하고 잘못하면 물러나게 했다. 조개구슬 띠에 새겨 외워 전했다. 프랭클린이 이 연맹을 미국 연방의 본보기로 들었다는 점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교역로 2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훈민정음

사건 · 1443 · 세종이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3년 뒤 반포한다.

글을 아는 사람의 범위가 근본적으로 넓어졌다.

【그때 그 자리】

15세기 조선에서 글을 안다는 것은 한자를 안다는 뜻이었다. 한자는 중국어를 적는 글자라 우리말과 어순부터 달랐다. 그래서 이두와 향찰과 구결처럼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는 방법을 써 왔는데 이것들은 한자를 이미 알아야 쓸 수 있었다. 결국 문자는 한문을 배울 시간이 있는 계층의 것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면, 조선은 유교 국가로서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스스로 선언한 나라였다. 세종 때 삼강행실도를 만들면서 그림을 넣은 것도 글을 못 읽는 사람 때문이었다. 억울한 옥사도 문제였다. 백성이 자기 사정을 글로 적지 못하니 관리의 붓에 운명이 달렸다.

【왜 그렇게 됐나】

세종은 소리를 적는 글자를 만들기로 했다. 있던 글자를 고쳐 쓰지 않고 처음부터 설계했다.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 ㅅ은 이, ㅇ은 목구멍이다. 여기에 획을 더해 ㄱ에서 ㅋ으로, ㄴ에서 ㄷ과 ㅌ으로 갔다. 소리가 세지면 획이 늘어난다.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 셋을 조합했다.

세계 문자 가운데 만든 사람과 만든 날짜와 만든 원리가 모두 기록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어떻게 흘렀나】

1443년 12월 완성해 1446년 반포했다. 최만리 등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중국과 다른 글자를 쓰는 것은 오랑캐가 되는 일이고 쉬운 글자가 생기면 학문을 소홀히 한다는 논리였다.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곧바로 공식 문자가 되지는 못했다. 관청 문서와 과거 시험은 한문으로 남았다. 새 글자는 여자와 아이의 글, 언문으로 불렸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남았다. 편지와 소설과 판소리 사설과 요리책이 한글로 적혔다. 홍길동전과 춘향전이 한글로 읽혔다.

【그래서】

19세기 말에 상황이 뒤집힌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공문서에 한글을 쓰도록 정했고, 1896년 독립신문이 한글 전용에 띄어쓰기까지 넣어 나왔다. 신문이 나라의 일을 한글로 알리기 시작하자 여론이라는 것이 생겼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어학회가 맞춤법을 정리하고 사전을 만들다가 1942년 회원들이 잡혀갔다. 글자를 지키는 일이 곧 저항이 됐다.

【남은 것】

지금 한국의 문맹률은 1퍼센트 안팎이다.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를 익히면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구조 덕이 크다. 휴대전화 자판에서 획을 더하는 방식이 그대로 쓰이는 것도 500년 전 설계 원리가 지금 기계에 맞아떨어진 결과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1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4군 6진 개척 피렌체 르네상스 구텐베르크 인쇄술 팀북투의 책 이로쿼이 연맹 마추픽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