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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왜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왜영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를 아편이 메우고 있었다. 청이 아편을 몰수·폐기하자 영국이 자유무역과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함대를 보냈다.
결과청이 영국에 패해 홍콩을 내주었다.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에 이르다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보고 자연선택을 떠올렸다. 20년을 미루다 종의 기원을 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이 같다는 말은 그때 조선에서 위험한 말이었다.
사포텍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어를 열두 살에 배웠다. 프랑스가 세운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지켰다. 교회와 군의 특권을 없앤 개혁법을 밀어붙였다.
천인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한 뒤, 권력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했다.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22첩을 접었다 펴면 전국이 된다. 목판에 새겨 여러 벌 찍을 수 있게 했다. 지도를 소수의 비밀에서 꺼낸 것이다.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됐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사건 · 1838 · 법원이 편을 들어줘도 소용없었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에 따라 연방 정부가 강행했다 — 대법원이 체로키족의 손을 들어줬는데도 잭슨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다. 체로키족만 4천 명 가까이 숨졌다고 추산된다.
그때 그 자리: 1838년, 미국 조지아와 테네시 등지에 살던 체로키족 약 1만 6천 명이 연방군의 강제 집행으로 고향을 떠나 현재의 오클라호마(인디언 준주)까지 약 1,600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왜 그렇게 됐나: 1830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서명한 인디언 이주법이 미시시피강 동쪽 원주민을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킬 근거가 됐다. 체로키족은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걸어 1832년 체로키는 독립된 국가이며 조지아주가 간섭할 수 없다는 승소 판결까지 받아냈다.
어떻게 흘렀나: 그런데도 잭슨 대통령은 판결 집행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전한다. 결국 1838년 군이 체로키족을 강제로 집결시켜 이주시켰다.
겨울 행군 중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으로 체로키족만 4천 명 가까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체로키뿐 아니라 촉토와 치카소와 머스코지와 세미놀 등 다섯 부족 전체가 비슷한 시기에 강제 이주를 겪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원주민 부족이 조약과 법원 판결로도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주 이후 인디언 준주에 정착한 부족들도 남북전쟁과 이후의 추가 영토 축소를 겪었다.
남은 것: 오클라호마의 체로키 네이션은 지금도 존속하며, 트레일 오브 티어스 경로는 미국 국립 역사 유적지로 지정돼 있다. 사망자 수 추정치는 사료에 따라 갈린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와이탕이 조약 그란콜롬비아 아일랜드 대기근 통가 왕국의 통일 벨기에 독립 마취의 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