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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적 국제 질서. 열강이 회의로 세력 균형을 관리했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끓었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유럽 무역상을 통해 머스킷 총이 들어오면서, 총을 먼저 확보한 부족이 그렇지 못한 이웃 부족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결과총을 먼저 손에 넣은 응아푸히족이 초기에 크게 우세했으나, 곧 다른 부족들도 총을 구하면서 전쟁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번졌다. 인구 이동과 전통적 세력권 재편이 뒤따랐다.
왜약 4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인들이 1821년 각지에서 봉기하며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결과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동경으로 유럽 각국에서 자원한 의용병(시인 바이런 등)들이 그리스 편에 섰고,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함대가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이집트 함대를 격파하며 전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었다.
왜콘바웅 왕조가 아삼과 마니푸르로 팽창해 영국령 벵골과 국경을 맞대자 세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첫 전쟁으로 아라칸과 테나세림, 둘째로 양곤 일대, 셋째로 나라 전체를 잃었다. 마지막 왕 티보는 인도로 유배됐고 미얀마는 인도 제국의 한 주가 됐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해 전자기유도를 발견했다. 그의 실험을 맥스웰이 방정식으로 완성한다.
동일과정설을 세우다
전류·전압·저항의 법칙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다
오스만의 알바니아계 군인으로 왔다가 실권을 잡았다. 유럽식 군대와 공장과 학교를 들였다.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시도한 첫 예로 꼽힌다.
안데스를 넘어 스페인군의 뒤를 쳤다. 오늘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나마가 그의 원정에서 나왔다. 하나로 묶으려 했으나 갈라졌다.
작동한 적 없는 계산 기계를 위한 절차를 최초로 적어 남겼다.
일이 열로 바뀐다는 것을 재다
던지는 창 대신 짧은 찌르는 창을 쓰게 하고, 소뿔 모양으로 감싸는 진형을 만들었다. 작은 부족을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최강으로 바꿨다.
아르헨티나에서 군대를 만들어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를 해방하고 배로 페루로 갔다. 볼리바르와 만난 뒤 지휘권을 넘기고 스스로 유럽으로 떠났다.
손 씻기를 처음 주장한 의사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을 끝냈다. 뒤에 총리도 지냈다.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을 왕정과 세력 균형으로 되돌렸다. 33년간 혁명을 억눌렀으나 1848년 혁명에 쫓겨났다.
절대영도를 계산하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팔 수 없다고 했다. 흩어진 부족을 하나의 연합으로 묶어 서쪽 확장을 막으려 했다. 1813년 전사하며 그 구상도 끝났다.
기체 속 입자 수의 법칙
스페인, 이어 이 지역을 점령한 브라질(포르투갈)에 맞서 게릴라식 저항운동을 이끌며 우루과이 독립운동의 기틀을 놓았다. 정작 자신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파라과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을 울렸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시인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다.
청력을 잃고 유서를 썼지만 「운명」을 목덜미로 붙잡겠다며 일어섰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노래가 됐다.
스쿠타리 병원의 사망률을 위생 개선으로 40%에서 2%로 낮췄다. 통계 그래프로 정부를 설득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에 이름을 붙였고 노예무역의 참상을 알렸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라는 인사가 그를 다시 세상과 이었다.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꺾고 전사했다. 영국의 제해권이 굳어졌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사건 · 1831 ·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 10년 만에 갈라졌다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남미 북부를 하나의 국가로 묶어 세운 그란콜롬비아는 지역 간 이해관계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볼리바르가 병으로 물러난 직후인 1830~1831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차례로 이탈하며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 세 나라로 갈라졌다.
그때 그 자리: 1819년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파나마 지역을 하나로 묶어 그란콜롬비아를 세웠다.
왜 그렇게 됐나: 볼리바르는 작은 나라들로 쪼개지면 유럽 열강에 다시 휘둘릴 것을 우려해 큰 통합국가를 지향했다. 그러나 지역마다 지리적 거리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 중앙집권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흘렀나: 지역 카우디요(군벌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과 중앙-지방 갈등이 계속됐다. 볼리바르가 병으로 물러난 직후인 1830년 베네수엘라가, 이어 에콰도르가 이탈했다.
그래서: 1831년 남은 지역이 누에바그라나다 공화국(현 콜롬비아·파나마)으로 재편되며 그란콜롬비아는 완전히 해체됐다.
남은 것: 볼리바르는 해체 직전 '혁명을 위해 봉사한 자는 바다를 갈아엎은 것과 같다'는 절망적인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18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벨기에 독립 철도의 개통 트레일 오브 티어스 먼로 독트린 브라질 독립 와이탕이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