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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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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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청동기 제국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아시리아-미탄니 전쟁BC 1350 – BC 1300
아시리아 vs 미탄니

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와슈칸니 함락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50년 · 대국의 교체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네페르티티정치BC 1345 · 베를린의 흉상으로 남은 아마르나의 왕비
BC 1370 무렵 – BC 1330 무렵

아케나텐과 함께 태양신 아텐을 섬겼다. 3,300년 전 흉상이 1912년 발굴되어 고대의 얼굴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 아케나텐의 대왕비, 아텐 숭배 공동 주도
  • 네페르티티 흉상(베를린 신박물관)
  • 아케나텐 사후 공동 통치자였다는 설

그 무렵의 사건

BC 1323
투탕카멘
아홉 살에 즉위해 열여덟에 죽은 소년 왕.
재위 중 한 일은 아버지의 개혁을 되돌린 것뿐이다. 그런데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1922년에 발견되면서, 가장 하찮았던 파라오가 가장 유명해졌다.
BC 1350
아마르나 종교개혁
한 왕이 신을 하나로 줄이려 했다.
아멘호테프 4세가 태양원반 아텐만 섬기겠다며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미술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BC 1274
카데시 전투
전차 5,000대가 부딪친 청동기 최대의 전투.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무와탈리 2세가 시리아를 두고 붙었다. 람세스는 신전마다 대승이라 새겼지만, 히타이트 기록과 대조하면 무승부에 가까웠다. 양쪽 기록이 다 남은 최초의 전투다.
BC 1259
최초의 평화조약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문서로 전쟁을 끝냈다.
카데시 이후 16년, 두 제국이 상호 불가침과 범죄인 인도를 약속했다. 이집트어판과 히타이트어판이 모두 남아 있고 내용이 일치한다. 복제본이 유엔 본부에 걸려 있다.

교역로

해당 없음

투탕카멘

사건 · BC 1323 ·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았다

재위 중 한 일은 아버지의 개혁을 되돌린 것뿐이다. 그런데 무덤이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1922년에 발견되면서, 가장 하찮았던 파라오가 가장 유명해졌다.

【그때 그 자리】 BC 1332년 무렵 아홉 살에 즉위했다.

아케나텐의 아들로 본다. 어머니는 「젊은 여인」이라 불리는 미라로, 아케나텐의 친누이라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있다.

즉위했을 때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신들이 버려졌고 신전이 닫혀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되돌리는 일을 했다.

이름을 투탕카텐에서 투탕카멘으로 바꿨다. 아텐에서 아문으로다.

수도를 테베로 옮겼다. 아마르나를 버렸다.

「복구 비석」이 남아 있다.

「신전들이 폐허가 되어 잡초가 무성했다. (…) 신들이 이 땅에 등을 돌렸다.」

아홉 살이 한 일이 아니다. 재상 아이와 장군 호렘헤브가 실권을 쥐었을 것으로 본다.

【어떻게 흘렀나】 열여덟이나 열아홉에 죽었다.

사인이 오래 논쟁이었다.

두개골 안의 뼛조각 때문에 타살설이 오래 돌았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지금은 본다.

2010년 CT와 DNA 분석 결과가 나왔다. 왼쪽 발이 기형이었고, 지팡이 130개가 무덤에 있었다.

말라리아 기생충이 검출됐고, 다리뼈에 골절이 있었다.

부러진 다리가 감염되고 말라리아가 겹쳤을 것으로 본다.

부모가 남매였던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함께 논의된다.

【그래서】 무덤이 작다.

왕가의 계곡의 다른 왕릉에 비해 초라하다. 급하게 준비한 흔적이 있다.

원래 왕이 아닌 사람의 무덤으로 준비되던 것을 썼다는 견해가 있다.

벽화가 한 방에만 그려져 있고, 마감이 서툴다.

그런데 그것이 남은 이유가 됐다.

작고 눈에 띄지 않았다. 뒤에 람세스 6세의 무덤을 파며 나온 돌무더기가 입구를 덮었다.

왕명표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아케나텐의 계승자로 함께 지워진 것이다.

그래서 도굴꾼도 잊었다.

【남은 것】 1922년 하워드 카터가 찾았다.

6년째 허탕을 치고 후원자 카나번 경이 지원을 끊으려던 참이었다. 마지막 한 시즌을 얻어 판 곳에서 계단이 나왔다.

구멍을 뚫고 촛불을 넣었다. 카나번이 뭐가 보이느냐 물었다.

「예, 놀라운 것들이(Yes, wonderful things).」

유물이 5,398점 나왔다. 정리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황금 마스크는 무게가 10kg이 넘는다.

「파라오의 저주」라는 이야기가 그 뒤 신문을 통해 퍼졌다. 카나번이 이듬해 죽었기 때문이다.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가장 중요하지 않았던 왕이 가장 널리 알려진 왕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아마르나 종교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