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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히타이트·이집트 신왕국·바빌로니아가 사신과 군대를 주고받았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히타이트에 얻어맞아 약해진 미탄니를 아시리아가 동쪽에서 밀었다.
결과미탄니가 지워지고 아시리아가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아시리아는 700년간 근동의 상수가 된다.
태양원반 아텐만을 섬기겠다며 이름과 수도를 바꿨다. 배가 나오고 턱이 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새기게 한 것도 파격이었다.
아케나텐과 함께 태양신 아텐을 섬겼다. 3,300년 전 흉상이 1912년 발굴되어 고대의 얼굴 가운데 가장 유명해졌다.
해당 없음
사건 · BC 1350 · 신을 하나로 줄인 17년
아멘호테프 4세가 태양원반 아텐만 섬기겠다며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미술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되돌려졌고 그의 이름은 왕명록에서 지워졌다.
【그때 그 자리】 BC 1350년 무렵이다. 아멘호테프 4세가 즉위했다.
이집트는 신왕국의 절정에 있었다. 그리고 아문 신의 사제단이 매우 부유했다.
정복지의 전리품과 땅이 카르나크 신전으로 흘러들었다. 사제단이 왕권을 위협할 만큼 커져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왕이 아텐을 내세웠다.
태양 원반이다. 그전에도 있던 신인데, 그것 하나만 섬기게 했다.
즉위 5년째에 이름을 바꿨다. 아멘호테프(아문이 만족하신다)에서 아케나텐(아텐에게 이로운 자)으로.
그리고 수도를 옮겼다. 아무 신전도 없던 빈 땅에 새 도시를 세웠다 — 아케타텐, 지금의 텔 엘아마르나다.
다른 신들의 신전을 닫았다. 비문에서 아문의 이름을 지웠다.
복수형 「신들」이라는 낱말까지 지운 곳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미술이 달라졌다.
그전까지 왕은 젊고 완벽하게 새겨졌다. 아마르나 미술은 다르다.
아케나텐의 얼굴이 길고 턱이 나왔으며, 배가 나오고 허벅지가 굵다.
병 때문이라는 설명이 오래 있었다. 지금은 의도적인 양식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 남녀를 함께 지닌 창조자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일상이 그려졌다. 왕과 왕비 네페르티티가 딸들을 무릎에 앉히고 입 맞추는 장면이 있다.
왕실을 이렇게 그린 적이 없었다.
「아텐 찬가」가 남아 있다.
「당신이 지평선에 아름답게 떠오르실 때 (…) 새들은 늪에서 날아오르고, 그 날개는 당신의 영을 찬양합니다.」
성경 시편 104편과 표현이 닮았다는 지적이 오래 있었다. 직접 영향인지는 논쟁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제국이 흔들렸다.
「아마르나 문서」가 그것을 보여 준다. 속국과 이웃 왕들이 보낸 점토판 380여 점이다.
시리아-팔레스타인의 도시들이 도와 달라고 계속 쓴다.
「왕께 아룁니다. (…) 적이 성문 앞에 있습니다. 궁수를 보내 주십시오.」
답이 없었다. 히타이트가 그 사이 북시리아를 가져갔다.
【남은 것】 17년 만에 끝났다.
아케나텐이 죽자 곧 되돌아갔다. 아들 투탕카텐이 이름을 투탕카멘으로 바꾸고 테베로 돌아왔다.
아케타텐이 버려졌다. 신전이 헐려 다른 건물의 채석장이 됐다.
왕명표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졌다. 「아케타텐의 범죄자」라고만 적혔다.
그래서 3,000년 동안 잊혔다.
「최초의 유일신교인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진다.
다른 신을 부정한 것은 맞다. 다만 아텐에게 직접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왕뿐이었고, 백성은 왕을 통해야 했다.
종교 개혁이 아니라 사제단의 권력을 뺏으려는 정치였다는 해석도 강하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투탕카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