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 즉위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몽골의 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한반도

무신정권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전쟁 2건

무신정권의 성립1170 – 1270
고려 무신 vs 문신

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보현원의 변 1170김보당의 난 1173삼별초 항쟁 1270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100년 · 무인의 시대
몽골의 정복1206 – 1279
몽골 제국 vs 금·호라즘·러시아 제후국·아바스·남송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에게 유목 연합체를 유지할 전리품과 목초지가 필요했다. 호라즘이 사신단을 처형한 것이 서방 원정의 방아쇠가 됐다.

호라즘 1219–1221칼카강 1223레그니차 1241바그다드 1258애산 1279

결과73년에 걸쳐 태평양에서 동유럽까지 이어지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이 만들어졌다.

73년 ·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이 만들어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7명

칭기즈 칸장군1206 · 몽골 대칸
1162 – 1227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 초원 부족을 통일 1206
  • 호라즘 정벌로 서방 진출
  • 역참제와 몽골 문자
피보나치과학1202 · 수학자
1170 무렵 – 1250 무렵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 계산의 책 저술 1202
  • 피보나치 수열
  • 인도-아라비아 숫자 체계 전파
리처드 1세장군1191 · 살라딘과 겨룬 「사자심왕」
1157 – 1199, 재위 1189 – 1199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 제3차 십자군, 아르수프 승리(1191)
  • 살라딘과 휴전, 성지 순례 보장
  • 오스트리아에 억류, 몸값 15만 마르크
주희사상1190 · 성리학을 집대성해 동아시아 700년의 정통을 만든 학자
1130 – 1200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 「사서집주」
  • 이기론·격물치지
  • 백록동 서원 재건, 「주자가례」
살라흐 앗딘장군1187 · 아이유브 술탄
1137 – 1193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
  • 하틴에서 십자군 격파
  • 예루살렘 탈환 1187
자야바르만 7세정치1181 · 얼굴 216개를 새긴 왕
1122 무렵 – 1218 무렵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 앙코르 톰과 바이욘
  • 탑마다 새긴 얼굴 216개
  • 병원 102곳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정치1180 · 이탈리아와 교황에 맞선 「붉은 수염」 황제
1122 무렵 – 1190, 재위 1155 – 1190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 이탈리아 원정 6회, 레냐노 패배(1176)
  • 사자공 하인리히 제압
  • 제3차 십자군 중 살레프강에서 익사

그 무렵의 사건

1206
칭기즈 칸 즉위
흩어진 초원 부족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였다.
흩어진 초원이 하나가 됐다. 73년에 걸친 정복이 여기서 시작된다.
1200
라파누이의 석상
섬 하나에 900개를 세우고 나무를 다 썼다.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에 닿아 거대한 석상 900개를 세웠다. 옮기는 데 나무가 필요했고, 숲이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 없어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스스로 자원을 다 쓴 사례로 오래 인용됐는데, 쥐와 유럽인이 옮긴 병의 몫이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1215
마그나 카르타
귀족들이 왕에게 법의 제약을 문서로 받아냈다.
왕도 법 아래 있다는 원칙이 문서로 남았다. 입헌주의의 씨앗이 된다.
1215
마그나카르타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해 왕권을 제한하는 대헌장에 서명했다.
왕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문서로 못박은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에는 귀족의 특권을 지키려는 문서에 가까웠지만, 후대에 재해석되며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이 됐다.
1180
베냉 왕국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베냉 왕국은 정교한 청동 조각과 궁정 예술로 이름 높았으나, 1897년 영국의 무력 원정으로 왕궁이 약탈당하고 멸망했다.
12세기 무렵 세워진 이 왕국은 오바(왕)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된 궁정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왕실 조상과 역대 오바를 기리는 정교한 청동·상아 조각('베냉 브론즈')으로 유명했다. 1897년 영국은 무역 분쟁을 구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청동 조각을 약탈해 유럽 박물관으로 실어갔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이지리아 반환 요구와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1234
금속활자
고려가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찍었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다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인쇄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칭기즈 칸 즉위

사건 · 1206 · 1206년 초원의 부족이 하나가 되다

흩어진 초원이 하나가 됐다. 73년에 걸친 정복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12세기 몽골 초원이다. 부족들이 서로 약탈하며 살았다.

케레이트·나이만·타타르·메르키트·몽골이 있었다. 금나라가 그 사이를 이간해 어느 한쪽이 커지지 못하게 했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에게 독살됐다. 아홉 살이었다.

부족이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어머니 호엘룬이 풀뿌리를 캐어 아이들을 길렀다.

【왜 그렇게 됐나】 「몽골비사」가 그 시절을 적었다.

이복형 벡테르와 먹을 것을 두고 다투다 활로 쏘아 죽였다. 어머니가 크게 꾸짖었다.

적대 부족에게 붙잡혀 목에 칼을 쓰고 지내다 달아났다. 그를 숨겨 준 사람의 후손이 뒤에 대접을 받는다.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에게 납치됐다. 되찾는 데 도움을 준 이가 케레이트의 옹 칸과 의형제 자무카다.

【어떻게 흘렀나】 20년을 싸웠다. 옹 칸과도 자무카와도 결국 갈라섰다.

1206년 오논강 상류에서 쿠릴타이가 열렸다. 초원의 모든 부족이 그를 「칭기즈 칸」으로 추대했다.

그가 한 일이 정복보다 중요하다.

부족을 해체했다. 사람들을 십·백·천·만 단위로 다시 묶었다(천호제). 옛 소속을 지운 것이다.

천호장은 혈통이 아니라 공적으로 임명했다. 노예 출신도, 적이었던 사람도 올라갔다.

케식이라는 친위대를 두고 천호장의 자제를 넣었다 — 인질이자 간부 양성이다.

「자삭」이라는 법을 세웠다. 약탈물을 마음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전투 중 이탈을 사형으로 다스렸다.

위구르 문자를 빌려 몽골어를 적게 했다. 명령이 말이 아니라 글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역참(잠치)을 깔았다. 하루 거리마다 말을 갈아탈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초원의 관습을 국가의 제도로 바꾼 것이 이 해다.

그 뒤 20년 만에 서하와 금과 호라즘을 무너뜨린다. 손자 대에 제국이 태평양에서 동유럽까지 간다.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이 됐다.

【남은 것】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성직자에게 세금을 면제했다 — 불교도, 무슬림,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도교 도사가 모두 궁정에 드나들었다.

장인과 기술자는 죽이지 않고 데려갔다. 그것이 기술의 동서 이동을 낳았다.

동시에 저항한 도시는 통째로 지웠다. 호라즘의 니샤푸르와 메르브 같은 곳이다.

그가 어디 묻혔는지 모른다. 무덤을 감추려 장례 행렬을 본 사람을 모두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몽골에서 그의 얼굴이 지폐와 공항 이름에 있다. 소련 시절에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1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라파누이의 석상 마그나 카르타 마그나카르타 베냉 왕국 금속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