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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왜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1200 · 숲이 사라진 섬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에 닿아 거대한 석상 900개를 세웠다. 옮기는 데 나무가 필요했고, 숲이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 없어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스스로 자원을 다 쓴 사례로 오래 인용됐는데, 쥐와 유럽인이 옮긴 병의 몫이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그때 그 자리】 남태평양 한가운데다. 가장 가까운 사람 사는 섬까지 2,000km다.
칠레 본토에서 3,700km 떨어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외딴 사람 사는 섬 가운데 하나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AD 1200년 무렵 닿았다.
【왜 그렇게 됐나】 「모아이」를 만들었다.
900개 가까이 확인됐다.
평균 높이 4m, 무게 12.5톤이다. 가장 큰 것은 10m에 82톤이다.
라노 라라쿠라는 채석장에서 화산암을 깎았다. 그곳에 미완성 석상이 400개 가까이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성 석상은 21m다. 완성했다면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조상을 새긴 것으로 본다. 대부분 바다가 아니라 마을 쪽을 바라본다.
「아후」라는 석조 단 위에 세웠다.
【어떻게 흘렀나】 어떻게 옮겼는가.
통나무를 굴대로 썼다는 설명이 오래 통용됐다.
그런데 섬의 구전에 「모아이가 걸어갔다」는 말이 있다.
2012년 실험이 있었다. 석상에 밧줄을 걸고 좌우로 번갈아 당기니 세운 채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냉장고를 옮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석상의 무게 중심이 앞쪽 아래에 있어 그것이 가능했다.
일부러 그렇게 깎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숲이 사라졌다.
꽃가루 분석에서 원래 큰 야자나무 숲이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그것이 다 없어졌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이 섬을 자멸의 사례로 들었다.
석상을 옮기려 나무를 다 베었고, 그래서 배를 만들지 못해 고립됐으며, 굶주려 싸웠다는 것이다.
지금 그 서술은 상당히 반박됐다.
쥐가 컸다. 사람과 함께 온 폴리네시아쥐가 야자 씨앗을 먹어 재생을 막았다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인구가 붕괴했다는 증거가 약하다. 유럽인이 오기 전까지 인구가 안정적이었다는 연구가 나왔다.
「로카헤」라는 돌밭 농법을 썼다. 돌을 깔아 수분을 지키고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척박한 땅에서 수확을 유지했다.
【남은 것】 진짜 붕괴는 유럽인이 온 뒤였다.
1722년 네덜란드 배가 부활절에 닿았다. 그래서 「이스터섬」이라 불렸다.
1862년 페루 노예 사냥선이 와서 주민 1,500명 이상을 잡아갔다. 인구의 절반이다.
살아 돌아온 소수가 천연두를 옮겼다.
1877년 섬의 인구가 111명이었다.
그때 문자(롱고롱고)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다 죽었다. 지금까지 해독되지 않았다.
「사람이 스스로 망친 섬」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그 서사 자체를 다시 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도에서 보기: 1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칭기즈 칸 즉위 마그나 카르타 마그나카르타 베냉 왕국 금속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