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전제군주정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근초고왕정치371 · 백제 13대 왕
? – 375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열었다. 평양성을 쳐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바다 건너 왜와 통했다.

  • 371년 평양성 공격, 고국원왕 전사
  • 칠지도를 왜에 보냄
  •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
율리아누스정치361 · 시계를 되돌리려 한 황제
AD 331 – AD 363

기독교 황실에서 자랐으나 그리스 철학에 빠져 옛 신들로 돌아가려 했다.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죽었다.

  • 이교 부흥 시도 — 실패로 끝남
  • 기독교인의 교직을 금함
  • 마지막 말 「갈릴리인이여, 그대가 이겼다」는 후대의 각색
테오도시우스정치392 ·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제국을 마지막으로 통일한 황제
347 – 395, 재위 379 – 395

이교 제의를 금지하고 니케아 신조를 강제했다. 죽으며 제국을 두 아들에게 나눴고, 동서 로마는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 기독교 국교화(테살로니카 칙령 380)
  • 올림피아 제전 등 이교 제의 금지
  • 사후 동서 로마 영구 분리(395)
광개토대왕정치396 · 고구려 19대 왕
374 – 412

열여덟에 즉위해 요동과 만주 동부, 한강 이북을 확보했다. 아버지 왕이 전사한 나라를 물려받아 스무 해 만에 뒤집었다.

  • 396년 백제 58성 700촌 확보
  • 400년 신라를 구원하고 금관가야까지 남하
  • 410년 동부여 복속
  • 광개토왕릉비 1,775자가 남았다

그 무렵의 사건

372
고구려 불교 수용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372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고구려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태학을 세워,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국가 체제를 갖췄다.
직전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위기를 겪은 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372년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들여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왕권 아래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이 정비를 바탕으로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410
로마 약탈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800년 만에 로마를 점령해 사흘 동안 약탈했다.
발칸에서 굶주리던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로 내려와 세 차례 로마를 포위했고, 8월 24일 밤 살라리아 문이 열렸다. 대규모 학살은 없었지만 「영원한 도시」가 무너졌다는 충격은 제국 전체를 흔들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서 「온 세계를 사로잡은 도시가 사로잡혔다」고 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에 답하려 「신국론」을 썼다.
330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제국의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는 1,123년을 더 버틴다.
325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첫 세계 공의회. 예수가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신조가 정해졌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낮다고 했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은 반대했다. 황제는 제국의 통일을 위해 300여 명의 주교를 니케아에 모아 결론을 강요했다. 여기서 나온 니케아 신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가 외우고, 부활절 날짜도 이때 정해졌다. 종교 문제를 황제가 결정하는 선례가 함께 생겼다.
427
나란다 대학
승려 1만 명이 배우던 곳.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
교사 2천 명과 학생 1만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티베트·한국·동남아시아에서 유학이 왔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1197년 침입으로 불탔고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고 전한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사건 · 372 · 소수림왕

직전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위기를 겪은 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372년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들여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왕권 아래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이 정비를 바탕으로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태학을 세워,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고대국가 체제를 갖췄다.

그의 아버지 고국원왕은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할 만큼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소수림왕은 나라 안팎의 혼란을 수습하고 왕권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372년, 그는 중국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여러 부족의 토착 신앙이 뒤섞여 있던 사회에서, 불교는 왕을 정점으로 한 통일된 사상적 권위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 같은 해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인재를 길렀다.

373년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그때까지 관습에 의존하던 통치를 성문화된 법에 따른 통치로 바꿔나갔다. 불교(사상적 통합)·태학(인재 양성)·율령(법적 통치)이라는 세 축을 갖춘 이 정비 덕분에,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고구려 불교 수용 로마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