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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열었다. 평양성을 쳐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바다 건너 왜와 통했다.
기독교 황실에서 자랐으나 그리스 철학에 빠져 옛 신들로 돌아가려 했다.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죽었다.
이교 제의를 금지하고 니케아 신조를 강제했다. 죽으며 제국을 두 아들에게 나눴고, 동서 로마는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열여덟에 즉위해 요동과 만주 동부, 한강 이북을 확보했다. 아버지 왕이 전사한 나라를 물려받아 스무 해 만에 뒤집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372 · 소수림왕
직전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는 위기를 겪은 뒤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372년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들여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왕권 아래 통치 질서를 확립했다. 이 정비를 바탕으로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며 태학을 세워,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고대국가 체제를 갖췄다.
그의 아버지 고국원왕은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할 만큼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소수림왕은 나라 안팎의 혼란을 수습하고 왕권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372년, 그는 중국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여러 부족의 토착 신앙이 뒤섞여 있던 사회에서, 불교는 왕을 정점으로 한 통일된 사상적 권위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 같은 해 국가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인재를 길렀다.
373년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법 체계인 율령을 반포해, 그때까지 관습에 의존하던 통치를 성문화된 법에 따른 통치로 바꿔나갔다. 불교(사상적 통합)·태학(인재 양성)·율령(법적 통치)이라는 세 축을 갖춘 이 정비 덕분에, 다음 대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