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넷으로 나눠 통치했고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합쳤다. 수도가 동쪽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가고,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간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열었다. 평양성을 쳐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바다 건너 왜와 통했다.
기독교 황실에서 자랐으나 그리스 철학에 빠져 옛 신들로 돌아가려 했다.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죽었다.
이교 제의를 금지하고 니케아 신조를 강제했다. 죽으며 제국을 두 아들에게 나눴고, 동서 로마는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열여덟에 즉위해 요동과 만주 동부, 한강 이북을 확보했다. 아버지 왕이 전사한 나라를 물려받아 스무 해 만에 뒤집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372 · 소수림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웠다.
왕권 강화의 이념이 들어왔다. 백제·신라가 뒤이어 받아들인다.
【그때 그 자리】
4세기 중반 고구려는 최악의 상태였다. 342년 전연에 수도가 함락돼 미천왕의 시신과 태후가 끌려갔다.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쳐 고국원왕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왕이 전사한 나라였다.
이때 고구려는 5부의 연맹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각 부의 귀족들이 자기 신을 섬기고 자기 조상을 모셨다. 왕은 그 위에 있는 큰 부족장에 가까웠다.
밖에서는 중국이 5호16국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중 전진이 화북을 통일해 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아들 소수림왕은 복수를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나라를 다시 짰다.
372년 전진의 부견이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 이듬해 아도가 왔다. 375년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웠다.
같은 해에 태학을 세우고, 373년 율령을 반포했다. 세 가지가 한 묶음이다.
이 조합에는 논리가 있다. 율령은 나라 전체에 같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고, 태학은 그 법을 다룰 사람을 기르는 것이며, 불교는 그 위에 하나의 세계관을 얹는 것이다.
부족마다 다른 신을 섬기면 부족을 넘는 충성이 생기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부처를 섬기면 그 위에 왕이 선다.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 관념이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였다.
밖에서 온 종교였다는 점도 오히려 유리했다. 어느 부족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흘렀나】
고구려가 받아들인 뒤 백제가 384년, 신라가 훨씬 늦은 527년에 공인했다.
백제는 동진에서 마라난타가 와서 전했고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신라는 반대가 거셌다. 귀족들이 반발해 법흥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차돈이 순교하고서야 공인됐다. 목을 베자 흰 피가 솟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가 늦고 어려웠던 이유는 골품제 때문이다. 귀족의 힘이 강해 왕이 새 이념을 들여오는 것을 막았다.
삼국이 모두 왕권을 세우는 시기에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이 공통된다.
【그래서】
소수림왕이 정비한 나라 위에서 광개토왕이 나온다. 즉위 20년 만에 요동과 만주 동부와 한강 이북을 확보한다. 얻어맞은 뒤 곧바로 반격하지 않고 제도를 먼저 손본 것이 그 바탕이 됐다.
【남은 것】
538년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했다. 일본 고대 국가의 틀이 이 길로 갔다. 아스카데라를 백제 기술자가 지었다.
고구려에서는 승랑 같은 승려가 중국으로 건너가 삼론학에 큰 영향을 줬다. 배운 쪽이 가르치는 쪽이 된 것이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50년이 넘었다. 그 사이 팔만대장경과 석굴암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종교가 들어오는 통로가 대개 상인이나 개인 신앙인데, 삼국은 국가가 국가에서 받았다. 부견이 순도를 보낸 것은 외교 행위였다. 그래서 이 종교는 처음부터 정치와 함께 왔고, 이후 1,500년간 그 성격이 이어진다.
지도에서 보기: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로마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