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몽골의 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한반도

원 간섭기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전쟁 1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이븐 바투타탐험1350 · 30년을 걸어 12만 km를 간 사람
AD 1304 – AD 1369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 아프리카·중동·인도·중국·이베리아를 순회
  • 델리 술탄국의 법관으로 일함
  • 「리흘라」 — 14세기 세계의 목격담
가자 마다정치1350 · 섬들을 하나로 묶겠다 한 재상
? – 1364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 팔라파 맹세
  • 자바에서 말라카까지
  • 지금 인도네시아 대학과 화폐에 이름이 남았다
주원장정치1368 · 거지 승려에서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1328 – 1398, 재위 1368 – 1398

홍건적의 난에서 몸을 일으켜 몽골을 북으로 내쫓았다. 재상제를 없애고 공신 수만 명을 숙청해 황제 독재의 틀을 만들었다.

  • 명 건국, 원을 초원으로 축출(1368)
  • 호유용·남옥 옥사로 공신 대숙청
  • 이갑제·어린도책 — 농촌 통제 체제
만사 무사정치1324 · 금을 뿌리며 순례한 왕
1280 무렵 – 1337 무렵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 1324년 메카 순례
  • 팀북투에 학자와 건축가를 데려옴
  • 1375년 카탈루냐 지도에 금덩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짐

그 무렵의 사건

1347
흑사병
3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력이 귀해지며 농노제가 흔들린다.
노동력이 귀해져 농노제가 흔들리고 임금이 올랐다. 중세 질서가 여기서 금이 간다.
1350
아유타야
프랑스 사절이 파리만큼 크다고 적었다.
강 세 줄기가 만나는 섬에 세운 도시로 400년을 갔다. 중국·일본·페르시아·포르투갈 상인이 각자의 구역에 살았다. 1767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불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방콕을 세운다.
1356
공민왕의 반원 개혁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는 등 자주적인 개혁을 펼쳤다.
그는 원나라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원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기철 등 친원 권문세족을 숙청했다. 원이 함경도 일대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공격해 100년 만에 그 땅을 되찾았고, 몽골식 풍습(변발·호복)도 금지했다. 신진 사대부를 등용해 권문세족을 견제하려 했으나, 개혁을 뒷받침하던 승려 신돈이 실각하고 공민왕 자신도 시해당하면서 개혁은 완결되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럼에도 그의 개혁은 이후 신진 사대부가 성장해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1356
한자동맹
뤼베크를 중심으로 북유럽 상업 도시들이 맺은 동맹. 발트해와 북해 무역을 200년간 지배했다.
청어·모피·밀랍·곡물을 실은 코그선이 노브고로드에서 런던까지 오갔다. 도시들은 공동 창고와 특권을 지켰고 필요하면 함대를 모아 덴마크 왕과 싸워 이겼다. 1356년 뤼베크에서 첫 총회가 열려 동맹이 제도로 자리 잡았다. 영토 국가가 커지고 대서양 무역이 열리면서 쇠퇴했으나, 오늘의 독일 항공사 이름에 그 자취가 남았다.
1324
말리 제국의 전성기
14세기,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황금과 소금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황제 만사 무사가 1324년 메카 순례길에 어마어마한 금을 뿌리듯 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개인의 사례로 회자된다. 그가 지나간 카이로 등지에서는 이 대량의 금 유입으로 물가가 한동안 폭등했을 정도였다. 제국의 중심지 팀북투는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도 이름을 떨쳐,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내부 계승 다툼과 외부 세력의 압박으로 15~16세기에 걸쳐 서서히 쇠퇴했다.
1377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불교 선종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됐는데,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1450년대)보다 70여 년 앞선 것이다. 상하 두 권 중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해지는데, 19세기 말 조선에 근무하던 프랑스인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뒤 오랫동안 존재조차 잊혔다가, 1972년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가 이를 찾아내 세계에 알렸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흑사병

사건 · 1347 · 3년 만에 유럽 끝까지

노동력이 귀해져 농노제가 흔들리고 임금이 올랐다. 중세 질서가 여기서 금이 간다.

【그때 그 자리】 14세기 유럽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300년간 인구가 늘어 경작지가 한계에 이르렀고, 1315년부터 이어진 대기근으로 이미 인구의 10%가 죽은 상태였다. 영양이 나쁜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었다.

동시에 세계가 이어져 있었다. 몽골이 만든 길로 상인이 유라시아를 오갔다. 상인이 다니는 길은 쥐와 벼룩도 다니는 길이다.

【어떻게 왔나】 1331년 중앙아시아 톈산 부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1346년 크림반도의 제노바 상관 카파를 몽골군이 포위했는데, 병으로 죽은 시신을 투석기로 성 안에 던졌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의 생물학전으로 언급되지만 이미 쥐를 통해 들어갔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1347년 10월 카파를 떠난 배가 시칠리아 메시나에 닿았다. 선원 대부분이 죽어 있었다. 거기서부터 3년이 걸렸다 — 1348년 이탈리아와 프랑스, 1349년 잉글랜드, 1350년 스칸디나비아.

【무엇이 죽였나】 페스트균이 원인이다. 쥐벼룩이 옮기는 선페스트가 기본형이지만, 폐로 들어가면 사람 사이에 직접 전염되는 폐페스트가 된다. 치사율이 선페스트는 60%, 폐페스트는 거의 100%였다.

당시 사람들은 원인을 몰랐다. 나쁜 공기(미아스마) 때문이라 여겨 향을 피웠고, 신의 벌이라 여겨 채찍질 고행단이 돌아다녔다.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으로 학살이 벌어졌다.

【그래서 — 노동의 값이 올랐다】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그런데 땅과 가축과 집은 그대로 남았다. 살아남은 사람 한 명이 가질 수 있는 몫이 늘었다.

일손이 귀해지자 임금이 뛰었다. 영주들이 「흑사병 이전 임금으로 묶는다」는 법을 만들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옆 마을이 더 준다면 가면 그만이었다.

1381년 잉글랜드 농민반란은 그 흐름에서 나왔다.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실 잣던 때 누가 귀족이었는가」라는 설교가 돌았다.

【교회의 권위】 사제들이 병자를 돌보다 많이 죽었다. 빈자리를 급히 채우느라 자질이 떨어졌고, 도망친 사제도 있었다. 무엇보다 기도해도 죽는 것을 모두가 봤다.

죽음을 가까이서 본 경험이 예술에도 남았다. 「죽음의 무도」가 이 시기에 나온다 — 교황도 왕도 농부도 해골과 함께 춤춘다.

【남은 것】 봉건제가 여기서부터 풀렸다. 농노를 땅에 묶어 두던 구조가 노동력 부족 앞에서 유지되지 못했다.

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금이 갔고, 그 틈에서 개인의 신앙을 묻는 흐름이 자랐다. 170년 뒤 종교개혁의 흙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견해가 있다.

인구가 회복되는 데 200년이 걸렸다. 그 200년 사이에 유럽은 르네상스와 대항해와 종교개혁을 겪는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아유타야 공민왕의 반원 개혁 한자동맹 말리 제국의 전성기 직지심체요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