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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키예프 루스의 전성기다.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도서관을 두었으며 최초의 성문법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정리했다.
노르망디 공의 사생아로 태어나 잉글랜드 왕이 됐다. 헤이스팅스 한 번의 전투가 잉글랜드의 지배층과 언어를 통째로 갈았다.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열여덟에 이미 이름난 의사였다. 그가 정리한 의학 백과가 유럽 의대에서 600년간 교과서로 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슬람 세계에 들여온 사람이기도 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1050 · 미시시피강가의 도시
북아메리카에 유럽인이 오기 전 가장 큰 도시였다. 밑변이 기자 대피라미드보다 넓은 흙 둔덕을 쌓았고, 나무 기둥을 원으로 세워 해를 관측했다. 13세기에 버려졌는데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때 그 자리】 AD 1050년 무렵이다. 지금의 미국 일리노이주, 세인트루이스 건너편이다.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이 만나는 곳 근처다.
카호키아가 섰다.
인구가 1만 5천에서 2만으로 추정된다. 당시 런던보다 컸다.
1780년대 필라델피아가 그 규모를 넘을 때까지, 지금의 미국 땅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왜 그렇게 됐나】 옥수수다.
AD 900년 무렵 옥수수 농사가 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그전의 작물보다 수확이 훨씬 많다. 저장도 된다.
인구가 늘었다.
그리고 위치가 좋았다. 강이 만나는 곳이라 교역의 목이었다.
「아메리칸 보텀」이라 불리는 범람원의 땅이 기름졌다.
【어떻게 흘렀나】 흙무덤을 120기 넘게 쌓았다.
가장 큰 것이 「몽크스 마운드」다.
밑변이 291m×236m, 높이 30m다. 밑면 넓이가 기자 대피라미드보다 넓다.
흙 2,200만 세제곱피트를 바구니로 날라 쌓았다.
꼭대기에 큰 건물이 있었다. 지배자의 거처로 본다.
「우드헨지」가 있었다. 삼나무 기둥을 원형으로 세운 것이다. 지름 125m다.
가운데 서면 특정 기둥 위로 춘분과 추분의 해가 뜬다.
「마운드 72」에서 발굴된 것이 논쟁을 낳았다.
조개구슬 2만 개를 매 모양으로 깔고 그 위에 남자를 눕혔다.
그 주변에 젊은 여성 53명이 나란히 묻혀 있었다. 다른 구덩이에는 남자 넷이 머리와 손이 잘린 채 있었다.
순장으로 본다.
2016년 재분석에서 「매의 전사」로 알려진 그 중심 인물이 남녀 한 쌍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해석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그래서】 AD 1350년 무렵 비었다.
이유를 두고 여러 설명이 있다.
삼림 벌채로 홍수가 잦아졌다는 「나무 남벌설」이 오래 통용됐는데, 최근 퇴적물 연구에서 반박됐다.
가뭄, 정치적 분열, 질병이 거론된다.
도시 둘레에 2만 그루의 통나무로 방책을 세운 흔적이 있다. 네 번 다시 지었다.
갈등이 있었다는 뜻이다.
【남은 것】 유럽인이 왔을 때 이미 없었다.
그래서 오래 잊혔다.
19세기에 「누가 지었는가」 논쟁이 붙었고, 원주민이 아닌 누군가가 지었다는 주장이 퍼졌다.
지금은 미시시피 문화의 것으로 확정됐다.
1982년 세계유산이 됐다.
유적 일부가 고속도로와 주택가 아래에 있다. 「몽크스 마운드」 바로 옆으로 도로가 지난다.
지도에서 보기: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동서 교회 분열 촐라 왕조의 해상 원정 카노사의 굴욕 강감찬과 귀주대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