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송이 요를 치려고 금과 손잡았는데, 요가 사라지자 완충지대도 함께 사라졌다.
결과휘종·흠종 부자와 황족 3,000명이 만주로 끌려갔다. 남은 황자가 강남에서 남송을 이었고, 중국의 경제 중심이 이때 남쪽으로 옮겨간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코르도바의 법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 그의 주석 덕에 유럽이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읽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1126 · 고려 왕실과 겹사돈을 맺어 최고 권력을 누리던 외척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은 두 딸을 예종과 인종에게 각각 시집보내며 왕실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라는 이중의 위치로 권력을 독점했다. 인종이 그의 권력을 견제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우기까지 했다(1126년). 그러나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결국 척준경이 이자겸을 배신해 제거했고, 반란은 진압됐다. 이 사건은 고려 중기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곧이어 벌어질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배경이 됐다.
고려 왕실과 이중으로 사돈을 맺어 최고 권력을 누리던 외척 이자겸이 왕권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은 딸 둘을 각각 예종과 그 아들 인종에게 시집보내, 한 사람이 왕의 장인이자 외할아버지를 겸하는 유례없는 권력을 쥐었다. 그는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마저 살 정도였다.
인종이 이런 이자겸의 권력을 견제하려 하자, 이자겸은 무신 척준경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에 불을 지르고 인종을 사실상 감금하기까지 했다(1126년).
그러나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에 틈이 벌어졌고, 인종의 설득을 받은 척준경이 돌연 이자겸을 배신해 제거하면서 반란은 끝났다. 이 사건은 문벌 귀족이 왕권을 압도할 만큼 강해졌던 고려 중기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곧이어 벌어지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의 발단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앙코르의 물길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앙코르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