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황제 마우리키우스가 살해된 것을 구실로 호스로 2세가 침공했다. 사산군은 예루살렘과 이집트까지 점령했다.
결과헤라클리우스가 역전해 성십자가를 되찾았지만, 26년의 소모로 두 제국이 함께 탈진했다. 10년 뒤 사막에서 나온 아랍군에 둘 다 무너진다.
메카의 상인이었다가 40세 무렵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622년)한 뒤 공동체를 조직해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합했다.
수의 대군을 살수로 끌어들여 궤멸시켰다. 3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 즉위했지만, 신하의 간언을 듣고 돌궐을 꺾어 「천가한」으로 불린 황제가 됐다.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610 · 상인이 받은 계시와 622년의 이주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가 하나의 정치·종교권으로 묶인다.
【그때 그 자리】 7세기 초 아라비아반도다. 부족들이 각자의 신을 섬겼다.
메카에 카바가 있었다. 여러 부족의 신상 360개가 놓인 성소였다. 순례가 몰렸고, 그것을 관리하는 쿠라이시 부족이 부유했다.
무함마드는 그 부족의 하심 가문 사람이다. 고아로 자랐고 대상 무역을 했다. 정직해서 「알아민(믿을 만한 사람)」이라 불렸다.
부유한 상인 카디자와 혼인했다. 그가 열다섯 살 위였다.
【왜 그렇게 됐나】 마흔 무렵부터 히라 동굴에서 홀로 지내는 일이 잦았다.
610년 그곳에서 첫 계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읽어라(이크라)」였다.
떨며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 달라 했고, 카디자가 그를 처음으로 믿었다.
가르침의 핵심은 유일신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고아와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메카가 반발했다. 신이 하나뿐이라면 카바의 360개 신상이 무의미해진다 — 순례 수입이 걸린 문제였다.
게다가 신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말은 부족 질서를 흔들었다.
박해가 이어졌다. 일부 신자는 기독교 국가인 악숨으로 피난했다.
622년 북쪽 야스리브의 부족들이 그를 중재자로 초청했다. 그 도시가 오랜 부족 싸움에 지쳐 있었다.
신자들과 함께 옮겨 갔다. 이것이 히즈라(이주)다.
이슬람력의 원년이 그해다. 계시를 받은 610년이 아니라 622년이다.
무엇이 시작이라고 보았는지가 거기 드러난다 —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움마)가 만들어진 해다.
【그래서】 야스리브가 「예언자의 도시」, 메디나가 됐다.
그가 「메디나 헌장」을 만들었다. 이주민과 원주민, 그리고 유대 부족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고, 각자의 종교를 인정하며, 분쟁은 그에게 가져오도록 한 문서다.
메카와 여러 번 싸운 끝에 630년 거의 피 없이 메카에 입성했다. 카바의 신상을 부수고 그곳을 유일신의 집으로 삼았다.
632년 죽었다. 아라비아 대부분이 이슬람 아래 들어와 있었다.
【남은 것】 그 뒤 100년 만에 이베리아에서 인더스까지 퍼졌다.
왜 그렇게 빨랐는가에 대한 설명이 여럿이다. 비잔티움과 사산조가 서로 싸워 탈진해 있었다는 것, 세금이 이전보다 가벼웠다는 것, 개종을 강요하지 않고 인두세를 받았다는 것이 함께 거론된다.
지금 무슬림이 20억 명에 가깝다. 사람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 가운데 두 번째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살수대첩 티와나쿠와 와리 소그드 상인 헤지라 영이 숫자가 되다